어떤 작품을 평가하고 구분한다는 건 역시 힘든 일이다. 같은 살인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도 올리버스톤은 [내츄럴 본 킬러]를 만들었고 테렌스 멜릭은 [황무지]를 만들어냈다. [블랙 호크 다운]에서 리들리 스콧의 비주얼리스트적 야심과 미국방성 홍보 드라마의 영역을 구분 짓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취향의 차이란 위대한 것이라 요즘 같이 분쟁이 많은 세상에선 그런 차이에 대한 인정의 부재가 박터지는 싸움의 전초전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김지운 감독이 [달콤한 인생]에 대해서 개폼잡는 쌈마이 영화라고 미리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탁월한 비주얼과 빈약한 내러티브의 대비는 이 영화가 느와르-폭력-비극이라는 전통적인 인상들의 흐름을 기초로 하고 그에 집중하여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전직 경호원 출신인 김실장이 감정표출과 그것을 다루는데 얼마나 서투른지, 그리고 아직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지는 이병현의 물오른 연기로 쉽게 납득이 가는 편이다. 그래서 그가 두목 애인한테 흔들려서 망가져가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는 말하자면 너무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에 붕괴되야 할 숙명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억지스럽다 해도 우리는 이 영화의 느와르를 향한 노골적인 스타일 덕에 은연중에 그가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란 걸 기대한다. 그 덕에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신민아의 빈약한 팜므파탈도 충분히 감수 가능한 일이 됐다. 그녀는 하도 영화에 안 어울려서 되려 관객에게 그녀가 팜므파탈이란 것을 되새기게 만드는 희한한 기능을 한다. 문제는 김영철이 분한 두목인 강사장이다. 머리를 백발로 물들였고 의자의 실루엣 속에서 늙은이의 고독을 연출하는 노력도 해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력이 넘쳐보이는 그가 김실장처럼 파국에의 매혹에 그토록 끌리는 것은 비주얼로나 상황으로나 이해하기가 힘들어서 장르의 후까시용 소모재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최소한의 설명도 안되어있기에 억지로 갖다붙인 듯한 캐릭터가 되버렸다고나 할까.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르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도입부에서 이렇게 얘기해주니 이거 원 달아날 길은 확실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다니깐. 덕분에 보는 내내 [카우보이 비밥]이 떠올랐음이라. 어째 그리 그 방법론과 방향이 비슷한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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