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로 갈아낸 걸 살짝 다듬은 것 같은 번역본의 상태가 심하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켜서 많이 안타까웠던 구입가 4400원의 슬픔. 부기팝은 라이트노블이라는 상업적 장르 내에서 보일 수 있는 소설적 실험의 한계와 모든 인물의 화자화라는 구조가 가지는 컬트적 지향점, 그리고 캐릭터적 탁월함이 일러스트와 결합되어 세기말이라는 절묘한 시점에 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도시괴담의 수퍼히어로화.

[부기팝 리턴즈 VS 이미지네이터]를 거쳐 한층 센티멘탈해진 부기팝 시리즈의 노선을 보여주는 [부기팝 인 더 미러 판도라]는 복잡한 플롯과 미묘한 여운으로 부기팝 시리즈 중 팬층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지지도가 높은 에피소드다. 아웃사이더들이 만들어낸 유사가족과 예정된 비극의 이야기.

 

마지막이니만큼 있는대로 부기팝을 등장시켜 보이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전작들에선 가끔씩 모습을 들이밀거나 막판에 가서야 몇번 와이어를 휘둘러주던 부기팝이 여기선 작중 내내 등장해서 뛰고 부수고 자르고 날아다닌다. 고질라를 생각나게 하는 소재들이나 작가의 말이나 부기팝의 등장횟수나 여러모로 부기팝 버전 블럭버스터인 셈. 실질적으로 이것을 끝으로 부기팝엔 손을 안 댈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여기까지 구하고 말았다. 부기팝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려면 여기까진 봐줘야 한다 해서-_- 단편모음집인 [새벽의 부기팝]은 보다 소소해진 부기팝의 에피소드들로 이면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들.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서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소설은 이걸로 현재까지 마지막.

이면의 이면의 이면을 다룬 애니메이션판은 심야방영이란 것을 이용해서 영상, 음악, 스토리 등 전반적인 연출에 있어서 [레인]만큼의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슬레이어즈]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음침하고 컬트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연계되지만 오리지널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그 덕에 소설을, 그것도 새벽의 부기팝까지 읽지 않으면 거의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불친절한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철저하게 원작팬들을 노리고 만든 것처럼 보인다. 묻혀버린 게 더없이 아쉽지만 그것이 운명이었던 애니메이션.

패러렐 부기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소설판 부기팝의 세계와 유리된 만화판. 일단 부기팝의 공격무기부터가 와이어가 아니라 손가락총-_-이다. 아주 기초적인 설정들만 빌려오고 나머진 딴판. 그럭저럭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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