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나는 책을 그리 많이 사지 않는 편이다. 호일로 감싼 벽돌과 길죽한 나무합판 몇개로 어머니가 만들어준 엉터리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만화책이다. 그나마도 요샌 자주 안 사는 편이지만.
굳이 책을 사지말아야겠다, 라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굳이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나 할까. 이것은 지리적 이점이 나에게 따랐기 때문인데 어째선가 하면, 13살 때부터 툭하면 놀러가서 습관이 됐던 도서관이 19살이 되어 이사 간 집에선 5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로선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는 것만도 벅찬 일이었으니와 그나마 책을 살 땐 '도서관에 없는 책'이란 조건이 붙어야했다.
그런데 도서관에 떡하니 버티고 있음에도, 간만에 사고싶은 책이 나타났다. 나온지 6년이 지난 [the art book]은 마치 블로그 포스트를 떼어내 책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움베르토 에코가 설파한 책의 미래에 대한 대안인 포켓사이즈의 백과사전적 용량을 고수하고 있는 이 작고 도톰한 책은 비록 그 방향성이 이제는 흔해진 부류의 것이지만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는데 쾌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여전히 유효하다. 도판의 크기와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에 대한 부족한 정보가 이 책이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에피타이저적 특성을 재고하게 만들지만 아마도 그것은 소장 미술관의 주소까지 적어두게된 제작자들도 염두했던 것이려니와 주어진 틀 안에서 이정도로 집약시킨 노력과 착상은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이 두고 틈날 때마다 보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