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달]을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아쿠타가와상을 탄 다음, 하도 사방팔방에서 난리를 치던 것이 도서관에서 차마 책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지저분해진 [일식]을 고르진 못하고 그의 다른 작품인 [달]을 고르게 한 것이었음이다. 당시의 나는 소위 세간의 평판이 만들어내는 몰려다니기식 상찬의 전통에 충분히 익숙해져(지겨워져) 있었고 그런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달]을 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달]은 멋진 작품이었다. 그 한마디로 충분할 정도로.

그 이후에, 난 [일식]을 보려고 노력했었다. 왜 노력까지 해야했느냐면, 그것이 당최 손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책이 조금 두려웠다. [달]을 본 이후로, 나는 [일식]이 나에게 경이를 줄지 실망을 줄지 불안해하고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이후로 다시는 손창섭의 작품을 보지 않은 것처럼.

마광수 시집을 보게된 헌책방에서, 나는 큰맘 먹고 [일식]을 구입하게 됐다. 도서관에 있는 것은 너무 망가져 있었다. 그런 핑계로. 하지만 핑계야 어떻든, 책이 집에 있든 가방 안에 있든 쉬이 손에 들리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후회하는 거지만 오랜 머뭇거림은 내 태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모양이었다.

이제야 [일식]을 다 읽었다. 여러가지 번역상의 난제를 안고 나온 이 책은 그 리스크 탓인지 상대적으로 꽤 평이하게 보여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괜찮은 작품. 그러나 이단사상과의 충돌을 다루는 소재에 있어서 그 고증의 집요함에도 불구하고 번역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조금 부족하다는 인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냥 모조리 번역상의 난제 탓으로 돌리는 것이 속편할 수 있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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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0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4-1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와 아쿠타가와상 심사위원들이 그리도 얘기하는 의고체라는 것의 실체를 원어민이 아닌 이상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긴 합니다만.... 그것이 근대문명을 한문으로 소화해내려고 했던 메이지 시대의 문명충돌의 산물이라고 해도 결국 그 어체가 발전되어 현재의 일본소설을 이룬 것이라고 보면 과연 그 의고체라는 것이 일본소설의 전통에서 이 작품을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었는지 의심되는 바입니다. 작품 전체적으로 보여지는 문장들도 평판에서처럼 신경써서 구축된 무게감이 썩 느껴지지 못하는, 그런 일본소설의 맥락 하에서 영향받고 있는 듯한 인상이구요(역시 번역문제일려나). 물론 처음부터 그런 한계는 신경 안 쓰고 진행시킨 결과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굳이 그 의고체라는 것을 써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거든요. 암튼 원전을 못 읽는 이의 속앓이라고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