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을 써본답시고 한 다섯 줄 끄적인 다음, 깨달았다.

안 써진다.

글쓰는 법을 까먹어버렸다.

마치 번역문을 쓰는 듯한 어색한 문장에 끝날 때마다 덜그럭덜그럭 이가 맞지 않는 묘사들. 병신 같은 발상과 지저분한 곁가지들. 억지로 뜯어내려니 생채기만 나고 다 뭉개버리자니 쓸데없는 아쉬움만 남는구나. 내 손가락은 썩었다,

차가운 빗물에 절은 지하통로를 지나 텅 빈 구내식당을 거쳐서 휴학신청서를 내고 밀린 씨네21이라도 읽을 요량으로 들른 도서관, 컴퓨터실에서 이은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익스플로러를 누르자 떠오른 네이버 뉴스란을 통해 알게되었다. 충격이었다.

왜 충격이었을까. 난 그녀가 출현한 영화는 군대에서 본 <번지점프를 하다>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거기에 출현했던 여자가 이은주라는 배우란 걸 안 것은 제대 후의 일이었다. 그녀는 인상이 흐렸다.

그녀가 맡아왔던 죽음과 깊숙한 관계를 가진 캐릭터들,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나왔던 죽음의 날짜 2월 22일, 그녀에게 오늘 해야한다고 말해줬다던 유서 속의 인물.

뭐 다 좋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그 뒷담화들은, 날 우울하게 만들었다. 다시금 생각해보지만 난 그녀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나의 충격 자체가 나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주는 우울함은 나의 지지부진함과 겹쳐져서 급격한 하강효과를 만들어냈다. 어째서 우울은 이리 내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것인가. 내 부러진 손가락과 썩은 대갈통, 미치광이들과 절망뿐인 연애담, 욕구와 무시, 폭력적인 인식과 오해.

어디까지 썩어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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