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지음, 송지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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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오카다 토시오가 쓴 <오타쿠학 입문>은 오타쿠라고 하는 특화된 계층의 정당함을 웅변하고 있다. 그는 그자신이 오타쿠의 입장에 서서 그제껏 오해되고 왜곡되어 온 오타쿠들의 문화와 능력을 설명하고 그들의 업적과 인간적인 면모까지 개선해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오카다 토시오의 책은 그들이 왜,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그리고 일본이라는 사회에 출현했는지에 대해서 썩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주진 못했다. 그들은 진화된 인간이며 거기 있어 마땅한 인간이라는 것 이상의 설명이 실리지 못한 그의 저서는 사회과학적 측면에서의 한계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에티엔 바랄이 쓴 이 책은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그리고 재일 프랑스인이라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쓰여진 흥미로운 오타쿠 분석기이다. 여기서 저자는 오타쿠의 생성원인을 밝히는 작업에 분명한 촛점을 맞추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논리를 전개시켜나간다.

비록 <유유백서>를 '남성우월주의적 경향이 강한 레슬링 선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표현하는, 일본에서 십년을 넘게 산 사람이 쓴 책이라곤 도저히 믿겨지질 않는 센스와 지식을 보여주기도 하는(이 부분은 저자 탓인지 번역자 탓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 책은 <유유백서>에 대한 설명과 맞먹는 무지가 곳곳에서 돌출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좀 넘겨주고 참아주고 하면 현대 일본 사회의 하위 문화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해로 가득한 괜찮은 오타쿠 개설서이기도 하다. 이미 오타쿠 문화라는 것이 영역별로 특화된 일종의 종합지식인의 형태로 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직접 오타쿠가 되지 않는 한엔 그들을 설명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일종의 개설, 혹은 설명에 대한 양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또한 외부인으로서 오타쿠 문화를 바라보는 이의 한계를 담보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학문이 아닌 행동으로서의 오타쿠를 강조하는 오타쿠 이론가들은 이 부분에서 오타쿠와 비오타쿠가 구분된다고 천명한다.

그렇다면 장 자크 베넥스의 서문에서 보여진 가능성처럼, 그리고 오카다 토시오가 그렇게 바라던 것처럼 오타쿠란 단어는 과연 '매니아'라는 단어처럼 그 쓰임새가 광범위한 영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언어가 하나의 권력으로서 자리한다고 보자면 '매니아'가 퍼지게 된 데에는 영미권 제국주의의 성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에 비해서 현재 시점에서 오타쿠는 그 표면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너무 많이 붙어있다. 그것은 역사적, 사회적 측면의 문제이다. 그랜다이저가 100% 시청율을 기록했던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오타쿠라는 일본어를 대하는 시점에서의 미묘함이 가진 폭이 더 커진다. 다수의 부정적 사건과 연관되어 온 오타쿠란 단어가 일본에서는 찬반양론이 그나마 담론의 자리를 형성했다고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오타쿠는 철저하게 부정적인 단어다. 그것은 현상 이전에 역사적 차원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어린시절 추억 중 하나가 국적을 속인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련되어 있고 공사판에서 쓰이는 단어의 대부분이 일본어라는 걸 생각해보자면 이 오타쿠란 단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이율배반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전자에 있어선 가면라이더와 울트라맨에 빠져살았음에도 이후 그 세계를 저버린 일본의 소위 '비오타쿠' 계층과도 일치하는 측면이다. 오타쿠의 부정적 현상을 증폭시키는 외양적 측면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일맥상통한다. 오타쿠 문화가 가치파괴적이고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며 동시에 특정영역에서의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극단을 대변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자면 오타쿠층에서 뒤어나오는 일탈과 직접적인 반사회적 현상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유난히 따가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몇몇 오타쿠 이론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흔한 인간인지를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장르문학이 주류문학으로 편입하려 애쓰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가능성은 있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한 시도.

혹은, 그리 애쓸 필요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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