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그림과 네코미미라는 이 엄한 조합....

근간의 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특징이라면 매니악한 감각의 수요에 대한 집중적 공략이 세분화된 형태로 분류되어 일종의 의식적인 진화 과정을 거쳐 나오는 하이브리드적 결과물이란 점이다. 이것은 대중 문화산업에서의 소비 주체자로 오타쿠 계층이 완전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걸 뜻하는 것이고 에반게리온이 끌어들인 적극적인 담론화의 과정 이후에서부터 꾸준히 내려져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요정의 노래라는 고상한 이름이 붙은 이 작품 또한 그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드고어 미소녀 하렘물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티비 애니메이션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잔혹성의 한계를 시험한다. 일본 하드고어 애니메이션의 전통이 보여줬던 노골적인 잔혹성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도 이 정도의 표현이 야간 방영이라곤 하지만 티비에서 버젓이 방영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오카모토 린이 영점프에 연재하는 더럽게 재미없는 동명의 원작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첫화에서부터 사지절단의 학살극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날아다니는 팔다리와 쏱아지는 핏더미를 구경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토리를 따르는 친절한 학살 안내도.

절단된 손가락의 단면을 클로즈업으로 비춰주는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한가운데에 있는 건 미소녀들이고 하렘의 법칙에 따라 주인공 주변으로 좀비들처럼 서서히 몰려온다. 히로인인 뉴의 머리에 달린 귀를 주시하라. 네코미미의 변형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저 오타쿠적 미소녀 패턴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디자인이라니. 그런데다 그들은 서비스씬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충실하다. 한쪽에선 하드고어의 제전이 펼쳐지지만 다른 한쪽에선 미소녀들과 누드가 그만큼 충실하게 시청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이 두가지 극단적인 감각의 공존은 작품에 병적인 이미지를 씌워준다. 그 관계가 유독 낯설어보이는 것은 문제의 두가지 요소가 인과성 있게 융합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것은 <네크로맨틱>보다 더 고약한 취미이다. 적어도 <네크로맨틱>은 죽음과 섹스의 결합이 지독하게 끈끈했기 때문에 작품 자체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로맨티시즘의 기운마저 돌았었다. 하지만 <엘펜리트>가 추구하는 영역은 하나의 전형이 된 하렘물의 주인공들에게 가하는 극단적인 폭력의 광경이다. 그것은 하드고어 동인지의 전통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의식이며 미소녀와 하드고어라는 두 조합은 발상의 참신함과 표현상의 불쾌감을 동시에 감수해야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엘펜리트>는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솔직히 왜 연재중단이 안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주는 원작. 작가가 여자라는 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카모토 린의 원작이 워낙에 형편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원작이 가진 너저분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최대한 발상의 참신함을 가진 모티브를 유지하려 애쓰면서 하드고어적 감각을 티비 애니메이션 수준을 뛰어넘는 지점으로까지 발전시킨 애니메이션판은 이제는 아예 관습이 되어버린 부실한 작화와 연출의 시공을 가리지 않는 출현이 눈에 거슬리긴 해도 그럭저럭 점수를 주고픈 작품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연상케 하는 음악과 더불어 클림트의 그림들과 연결시킨 유난히 정적인 오프닝은 역시나 자뻑 증세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게 만들지만 피칠갑이 된 죽음과 오타쿠적 에로티즘이 공존하는 병적인 감각이 클림트의 그림이 보여주는 건조하고 병적인 에로티즘과 괜찮은 화학효과를 일으키는 걸 고려하자면 그 선택이 그리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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