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1)
언젠가 장정일은 인터뷰에서 왜 자신의 소설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에서 받은 영향은 적지 않은 것이며 그것이 작품 속에서 내재되어 나타나고 있다고. 과연, 그는 첫 소설인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에서 그 스스로도 불만이라고 한 크로닌적인 구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담이 눈뜰 때'는 제목에서부터 구약 세계로 화두를 밀어넣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은행원은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된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는 아예 재즈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담이라고 하는 종교적 키워드가 의미하는 것은 태초, 그리고 순수함일 것이다. 야훼는 아담부터 창조하고 이후 이브를 만들어낸 다음, 지식의 나무에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그 두 피조물이 무지함과 무감함을 통한 순수의 세계에 머물러 있길 바랬다. 이 '아담이 눈뜰 때'에서 장정일이 차용해 오는 이미지는 아담의 순결함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순수에 대한 강박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경박해져가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위한 것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단일후보화 실패에 따른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자발적으로 망가져버렸고 세상은 패스트푸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프리섹스와 단발마적인 감각으로 가득한 90년대 초에 순수를 끌어들이는 장정일은 그 코드로 60년대 히피즘의 세계를 한국땅 안에 펼쳐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익숙한 히피즘의 아이콘들-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 지미 핸드릭스, 유치하게도 60년대의 3J라 명명되는 그들-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죽음으로 순수를 성취해낸 이들에 대한 매혹이 순결을 담보한다고 주장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그에 따른 타나토스적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자기파괴적인 그들의 행동은 그를 통해 정신적 순결성을 지킨다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후일담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비겁한' 형에 대한 아담의 비판에서도 발견된다.

형은 한다면 하는 완벽한 이기주의자다.... 간장에 밥을 비벼먹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이 나라에서 달아나고 싶어했다는 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할 형의 모습과 쓰레기 리어카를 끌고, 요령을 흔들면서 지하 상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도무지 내 심정 속에서 용해가 되질 않았다....
-25P

그러나 속도의 천박함이 주는 감상에 절어버리길 거부하는 이들은 자본의 힘, 거대한 권력의 힘에조차 순수하다고 비웃어 줄 정도로 무지하다.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60년대의 3J라는 아이콘이 레코드 회사의 전략적 상품으로써 형성됐고 정작 히피즘 운동을 겪지 못한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일종의 성역화된 환상으로 발전했다는 걸 인식 못한다. 이것은 비단 음악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작품 내에서 쉬지 않고 비판되는 '포스트~'의 열풍 또한 서구에서 70년대에 끝난 이론을 80년대 말에야 일부 비평가들에 의해 수입되어 회자되었던 것 아닌가. 여기엔 문화식민지적 슬픔이 있다. 또한 이것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양상이 속도전에 가까운 강박 관념을 가지게 된 근거를 마련해준다.

(2)
열 아홉 살의 아담은 자신의 생을 관통할 릴리스와 이브를 만나게 된다. 아담의 바람난 아내가 될 운명인 릴리스는 은선이고 이브는 현재다.
은선은 '생리를 한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압적이었던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대학 입학이라고 하는 기성 사회의 통과 의례를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옭아매던 속박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런 그녀에게 아담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던 속박을 풀어제낄 소도구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탈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성 사회의 인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녀가 스스로 꽉 막힌 고등학교 생활의 탈출구로 여겼고 성공적으로 편입했다고 여겼던 기성 사회, 그 상징적인 현장인 대학은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또다른 억압의 현장이었고 그 속에서 그녀는 생명을 잃은 베낀 시의 창작을 통해 그들과 한자리에 서게되지만 결국 배반당하고 적응하지 못한다.

"들어가고자 한 대학에 들어갔었고, 시인이 되었어.... 모두들 박노해니 백무산이니 하는 시집들을 보거나 김남주나 김지하 시집들만 보는 거야. 꼭 고등학생들처럼 말이야. 게다가 집체까지 들고 나와서 나 같은 건 저리 가라는 거야."
-116P

아담의 이브인 현재는 아담의 시선에서 뭉크의 '사춘기'의 주인공인 여자 아이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현재는 그 자체로 결벽증적인 세계, 순수한 세계를 상징한다.

"그런 것들은 듣지 않아요. 요즘 음악은 아주 타락했으니까."
-37P

현재는 분출되는 욕구의 명징한 상징이자 비타협적 순수함을 표상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아직 고등학생인 그녀는 대입으로 상징되는 통과의례를 견디지 못한다.

그녀의 섹스 또한 순수 고독의 형식이다. 그녀의 섹스는 사랑을 위해서나, 출산을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사랑과 출산을 위해 쓰여지는 섹스란, 섹스 그 자체엔 이미 불순스런 것이다.
-46P

자아와 세계 사이에서 충돌하는 그녀의 의식은 극단적으로 나아가 자살로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현재가 가진 '사춘기'에 집착하는 아담은 현재를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하고 그녀를 '사춘기'의 그녀로 취급하는 페티시즘적 행동을 보인다. 이것은 역설적으론 그녀를 우회적으로 포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서 아담이 보인 행동은 그녀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녀에게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이중적인 자세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현재와의 정사는 시간이 갈수록 화자인 아담이 자신이 증오하는 이들, 돈으로 사람을 살 정도로 속도전의 세상에 물든 이들과 얼마나 닮아있는가를 반증한다. 결국 그-아담에게서조차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현재는 스스로의 의지로 목숨을 끊는다. 그래서 그녀가 60년대의 영웅들과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순간, '비겁하게' 살아남은 아담은 자신이 찾던 정신의 낙원이 가짜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절망에 처하였던 그 때에, 나는 야비한 방법을 써서 그녀의 관심을 내게서 끊도록 유도했다. 나는 울지 않기로 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 두 눈에선, 네온이 흐를테니까.
-108P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큰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가짜 낙원에서 잘못 눈을 뜬 아담처럼. 내 이브는 창녀였으며, 내 방은 항상 어둡고 습기가 차 있다. 어쩌다 책이 썩는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면, 네온의 십자가 아래서 세상은 내방보다 더 큰 어둠과 부패로 썩어지고 있다. 나는 내가 눈 뜬 가짜 낙원이 너무 무서워서 소리내어 울었다.
-109P


(3)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인 등가 교환의 법칙에 따라 아담은 두 사람을 만나서 섹스를 하게 된다. 그 첫 번째로 코스모폴리탄인 여자 화가는 그 자체로 가속도의 세계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재밌게도 그 표현은 섹스를 통해서다.

그녀의 다리는 무척 길었다. 나는 경부선 고속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긴 시간을 들여, 그녀의 발등에서부터 두 다리 사이까지를 입술로 물었다....
그녀는 내 허리를 그녀의 긴 두 다리로 꽉 부여잡고 있었다.
-55P

하지만 세상의 속도전과 경박함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던 이 커플은 음악사에 대한 무지를 뻔뻔스레 드러낸다.

"맞아. 요즘 가수들은 기껏해야 골반이나 흔들 줄 알지, 너도 나도 새까만 선글래스를 끼고 말이야. 사내 자식들이 꼭 시스터 보이처럼 해가지고는 색정광처럼 신음을 흘리지. 이렇게."
-52P

저 대사는 그들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선조로 삼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처음 음악사에 등장했을 때 기성 세대들에게 들어야 했던 비난과 다를 바가 없다. 경계짓기의 어리석음은 이렇게 우회해서 이들의 가치 준거라는 게 새로운 세대를 감지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진부하다는 걸 알려준다. 이들은 진짜, 진짜를 찾아다니지만 그 결과는 오독이었다. 이것은 앞선 비판, 세상에 대한 무지-어쩌면 작가의 무지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바이다. 아무튼 그녀와의 공감대 형성 및 섹스의 댓가로 아담은 뭉크 화집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가 유난히 좋아하는 '사춘기'의 부분은 뜯겨져 있는 것이었고 이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현재, 살아있는 '사춘기'의 소녀에게 페티시즘적 집착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두번째로 아담이 등가교환을 위해 만나는 중년 게이와의 정사는 작가 자신이 가진 소년원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터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특화되고 있다. 게이와의 정사가 보다 정신적인 교감이 필요하다는 건 우스운 얘기다. 다만 그 과정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아담은 이 정사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턴테이블에의 욕구가 이뤄낸 결과이고 그 때문에 스스로의 위선을 발견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 그래서 아담은 현재가 자신에게 그대로 해달라고 해서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받을 때,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깨닫게 된다.

나는 내키지 않았다. 스스럼 없음을 가장하여 나는 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힌 건지도 몰랐다.... 솔직을 가장하여 곧이곧대로 내 치부를 다 이야기 한다는 것은, 나는 이런 놈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과시 밖에 아니며, 결국 나한테 너는 그렇게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다. 비밀이 필요한 곳에서 비밀이 옳게 지켜지지 않으면, 경박함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거기에 부응하는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기주의자다.
105P~106P

(4)
현재의 죽음 이후 아담은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에게 속죄를 하고 자신이 도피하던 세상으로의 진입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강헌의 유명한 탈주극을 보게 되고 자신이 앞으로 살아야 할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깨닫게 된다.

어떤 사건이건 자본은 그것을 센세이셔널하고 상업적인 것으로 바꾼다.... 모든 의미를 희화화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사건은 충분히 소비된 다음, 잊혀진다. 다른 흥미를 찾아, 개발해야 하니까 '무전유죄, 유전무죄' 따위는 더 이상 연구거리가 되지 못한다.
-113P

이렇게 우회해서 그는 자신의 영웅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착취당했는가를 깨닫게 된다.(다만 그 이후에 있어선 틀렸다. 자본은 한 번 잡은 먹음직스런 상품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확대 재생산을 꾀한다. 소비될 자산은 한정되어 바닥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획일화되고 무의미한 세상이며 작중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탬버린 남자로 형상화되는 미래이다.
서울로 올라가서 그런 획일화된 세계가 그대로 재현된 것을 본 아담은 두통을 느끼고 의미없이 도시를 방황한다. 그리고 배설의 욕구를 느껴 창녀와 섹스를 하게 되는 아담은 돈과 육체의 교환이라는 지극히 1차원적이고 물질적인 거래를 망설이지 않고 되려 그 시스템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욕구에 비해 그의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질 않지만 아담은 창녀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망가진 이들 간의 교감, 혹은 상처 받은 이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위로. 다소 천박하긴 하지만(표현상이든, 그 뻔한 도식성으로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엔 그가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순수, 결국은 공허하기만 했던 그 표상이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를 통해 아담은 그의 형이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기주의자가 됐던 것을 극복한다.

방황의 끝에서 그제야 낙원의 뒷문에 서게된 아담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 중 마지막 것인 타자기를 가지게 된다. 타자기는 뭉크 화집이나 턴테이블처럼 훼손된 욕구의 상징이 아니다. 드디어 생산의 수단을 갖게 된 아담은 글을 쓰리라고 다짐한다. 과거 문학 속의 청춘들(생존자들)처럼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마친 아담은 유년기적인 의식의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인 기호들로 가득 찬 세계를 벗어나 보다 늙고 침착해졌으며, 비로소 초연함이라는 미덕을 얻게됐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과 탄식이 곁들여진 너절한 절망을 겨우 끝나고 스스로 짐을 짊어지게 된 자아가 '길안에서 택시를 잡는 것'처럼 수행해야 할 고난에 찬 앞길의 시작이기도 하다. 성서의 아담과는 달리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된 그의 죄는 무화과를 무화과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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