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부의 '개, 럭키스타'를 샀던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로, 그것이 수능 스트레스에 의한 충동구매의 일환이었다는 식의 분석은 지양한다. 왜냐면 그때의 난 에반게리온에 빠져서 친구놈한테서 그것의 불법 복제 비디오를 빼내느라 모든 시간을 다 보내고 있을 시기였기 때문으로 수능스트레스라는 단어는 저멀리 텍사스 벌판에 울려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멀고도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내가 대학교를 간다는 것에 확신도 없었고, 그래야 한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어부를 구입하게 만들었느냐. 그것은 무려 더블테이프(!)라는 부피적 강도에 압도된 결과였던 것이다. 프린스의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앨범인 'Emancipation'조차도 단지 두껍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당시로선 충격적인 3for1 앨범) 침을 질질 흘렸던 천박한 심성의 소유자인 나는 위성방송에서 보여줬던 어어부의 괴이했던 공연에 대한 기억(그때 부른 노래가 '밭가는 돼지'였는데, 악기는 빨래판이었다.)은 어디론가 쑤셔박아버리고 오직 그 압도적인 부피에 혹해서, 결국 나는 이 앨범을 손에 들고 만다.(그런데 나중에 보니 시디는 1장짜리였다. 그럼 테이프는 도대체 왜?)

그러나 이 앨범은 예상과는 달리 나중에 어어부 자신이 이너뷰에서 밝혔듯이 너무도 '팝'한 앨범이었다. 그는 그 이너뷰에서 9번 트랙인 '면도칼 계시록'이 왜 안 떳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토로하던데, 맞는 말이다. 그 노래는 놀랄만큼의 서정성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 혹은 해체되는 과정의 흐름을 꾸준히 따르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소리들은 하나 같이 '재미있는' 소리들이다. 즉슨, 귀에 착착 감겨오는, 일상이면서 일상을 벗어난 그런 소리들. 마지막 트랙 '희박한 육면체'는 대미를 장식하는 걸죽함과 신랄함, 발랄함, 해체된 텍스트와 귀에 착 감기는 훅까지 겸비한 소위 노래다운 노래이다. 전체적으로 컨셉트 앨범의 양식을 띄는 이 앨범은 소리의 잡화상이라고 할만 한 어어부 작업의 한 정점에 위치하는 결과물이자 어어부의 앨범으로선 놀라울 정도로 '사탕처럼 달콤하게 재미있는' 앨범이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어어부의 대중친화성 야심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이후 몇년이 지나 '사각의 진혼곡'이 편집된 반칙왕의 필름과 함께 무려 뮤직비디오로까지 방영되는 나날이 도착할 때까지, 착실하게 묻혀버리는 길이었다.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Track&menu=m&Album=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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