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덱스터워드의 비밀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영언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은 안타깝게도 별로 무섭지가 않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작품 내내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말그대로 '절어서' 살아가고 있건만 그걸 접하는 독자인 나에겐 그 공포가 직접적으로, 마치 내가 겪는 공포인양 와닿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공포를 전달하는 작가의 시선이 더없이 냉정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속으로 독자를 몰아부치려고 자세하고 해부학적인 묘사를 동원하거나 격정적인 인물들의 감정을 이용해서 닦달하질 않는다. 그는 공포가 일상적인 삶 속에 내재화된 사람처럼, 그래서 그가 곧잘 표현하는 신화적이라 할 법한 거대한 공포와 부딪혔을 때 두려움만큼이나 찬탄의 마음 또한 느낄 수 있을만치로 무척이나 차분하다. 

<광기의 산맥>도 그랬고 몇 편 접한 그의 단편들도 그랬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서술은 1인칭 화자의 입장에서조차 지극히 냉정하다. 여기서 냉정하다는 것은 공포와 마주한 인물들의 폭발할 듯한 감정선은 가급적 배제된 채 설명조차 하기 힘든 장대한 공포의 광경들에 대한 '매혹'을 지근지근 밟아가듯 정성스럽게 묘사하는 착실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그 서술 태도에 대해서다. 정작 독자는 볼 수 없는 실체와 맞닿은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실체를 볼 수 없어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압도된 감정'과 모호하면서도 절대적인 대상에 대한 노골적인 작가의 매혹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커다란 안개로 묘사하기도 했다.

압도적인 공포에 대한 '매혹'에 중점이 맞춰진 이야기의 흐름은 예상과는 달리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극단적으로 인물과 독자와의 접점이 이루기 위해 자극적이며 가히 포르노적이라 할 묘사로 버티는 허접한 공포소설들에 비해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절제의 정신과 엄격한 품위가 있다. 그것은 분명 초월적인 형태의 공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선하고 유효하다. 러브크래프트는 우리에게 너무 무시무시해서 아름답기까지 한 지옥을 꿈꾸게끔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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