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부녀 - 단편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세주문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차후 드래곤 헤드에서 보여줄 신경증적인 상황이 안겨주는 공포를 여기서 먼저 시험했다고 봐야 할텐데...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좌부녀는 조또 꿈나라를 날아다니는 스토리에 기껏해야 꽝꽝 울리는 효과음으로 관객을 겁주려는 근자의 한국 공포영화들에 비해 만화라고 하는 영화보다 한정된 감각을 빌리는 매체를 통해서 공포의 미덕이란 걸 잘 드러낸 작품이다..

여기선 소위 공포의 기본 조건으로 제시되는 신체 훼손이나 왜곡이 거의 안 드러난다. 그런 이미지적인 효과들은 철저하게 억제되어 나가다가 마지막, 두 번의 클라이막스에서 침착하게 사용된다. 오히려 초중반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기괴하지만 있을 법한 이미지를 가진 존재에 의한 스토킹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들이다. 그것은 분명 지하철이 난데 없이 무너진 터널 속에 갇혀버리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부조리하지만 동시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러니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별의별 해괴한 소식을 다 보고 듣게 된 미디어 시대의 대중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는 겁살나게 재수 없을지도 모를 그 누군가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이라는 공포의 밑바닥을 설득력 있게 눌러주고 있다. (욕구의 대상이었던 존재가 공포의 대상이 되는 형상인 좌부녀가 직시하고 있는 공포의 해당자는 남성이다. 그를 뒷받침해주듯 좌부녀의 디자인은 비틀어진 여성상을 확실하게 지향한다. 남자보다도 큰 키에 고통에 대한 감각의 결여와 그로 인한 맹목성, 그리고 여성성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바바리 코트!)

그러나 스토킹이란 소재, 어디 한 두번 봤나. 그래서 작가는 재밌는 시도를, 맥거핀이라 할만 한 장치를 설정한다. 그것은 중간 즈음에, 좌부녀에게 습격을 받은 두 남정네가 자신들의 불행의 근거를 찾아내려고 초등학교 시절로까지 거슬러 내려가는 작업을 통해서 발현된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불행의 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지금의 불행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좌부녀에서의 공포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현실적-인과적 측면에서의 설명은 사라진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하는 공포의 진정한 출발점이 된다. 즉, 이 시점에서부터 좌부녀는 어떤 현실적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 공포스러워진다. 주인공은 친구의 연락이 오기 전까지 좌부녀와 자신이 어렸을 적의 치부였던 죄를 동일시하면서 그녀가 자신을 괴롭히는 걸 당연하게 여겨야 할지 모른다고, 자신은 일종의 속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라는 게 드러나는 순간, 주인공은 구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속죄조차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 상태. 설명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존재. 여기서 좌부녀-공포는 완전히 불가해한 상태에서의 압박으로, 헤어날 수 없는 미궁으로 자리잡는다.

실재했던 악몽이 괴담이 되어 또다른 누군가를 잡아먹으러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는 마지막은 공포물의 통속성, '나'까지 포함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위협과 그로 인한 감정이입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뻔한데다 귀엽기까지 하지만 9.11 이후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을 동반할지도 모르는 피해에 대한 불안과 게시물 하나 잘못 누르면 시체 사진이 쏟아지는 세상, 그 실제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세상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이다. 비록 범아시아적 귀신이 되버린 사다코의 재현이라는 것이 좀 식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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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2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음산한 만화였습니다.
집착, 이상성격 이런 것이 귀신보다 더 무서워요.
잘 읽었습니다.^^

jenny-come-lately 2004-08-3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dafuck님의 만화 리뷰 별점 4개와 5개짜리는 꼭 읽고 싶어지도록 만든다 이겁니다.(걔 중에 몇 권만 구매를 하게되더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