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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베이션의 역사
이시카와 히로요시 지음, 김승일 옮김 / 해냄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역사 이래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된 개인주의와 그에 따른 사생활 영역의 공고화, 그리고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과 에이즈의 도래는 개인적이고 안전한 쾌락으로서의 마스터베이션의 기능적인 가치를 더없이 높여줬다. 클릭 몇 번만 하면 쉽게 쉽게 포르노 동영상이나 사진들을 받아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공간에서 성병의 위협도 없이 간단하게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세상은, 이론상으론 자위라는 행위가 거의 환상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섹스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위에 대한 거부감은 완강한 동시에 광범위한 편이며 그것은 그리 짧은 시간동안 구축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던 그 시점에서부터 생겨난 터부이고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학술 논문서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 이 책은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관점들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18세기,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연구서라 할만 한 '오나니아'의 출현 시점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꾸준하게, 아주 꾸준하고 착실하게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역사적인 시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풍부한 사료를 들어 서술한다. 그 과정은 학술서답게 아주 정공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보니 책 자체가 별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정보를 다루고 그것을 인용하는 것과 그 안에서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무척 평이하다. 단지 역사적인 순서로 정보를 나열한 것 이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랄까. 상당수의 판단은 이미 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결론에서 따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저자의 획기적이거나 특별한 주관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저자의 그러한 태도는 책이 객관적 사실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위한 선택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마스터베이션을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여겼던 시절의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주는 해학과 재치와 헛소리에 대해 경멸과 찬탄을 보낼 순 있는 반면 그 이상의 즐거움이나 깨달음을 발견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역사 서술적으로 풍속적인 경향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록으로서의 책의 가치가 존재하고 있지만 폐기처분된 과거의 이슈들만이 동어반복으로 전개되는 걸 본다는 건 역시 지루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