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꽃 기생
가와무라 미나토 지음, 유재순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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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는 그 명맥이 거의 끊겨버린 기생이라고 하는, 그 자체로 조선 시대의 남성적, 유교적 특성이 뒤섞인 모순을 보여주던 계급은 후대의 식자들에겐 일종의 환상의 영역이자 이상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탁월한 미모를 갖추고 시, 서, 화를 두루 다루면서 선비들과 삶과 정치에 대해 논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 여성들은 과거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매춘을 업으로 하는 여성들이 그랬듯, 그 시대의 최전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자들이었다. 식자들의 환상에 걸맞게 그녀들은 능력있고 뛰어났으며 그에 걸맞게 독립적이었다.(이것만큼은 식자들 마음에 들지 않았을 듯 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구전, 고전 문학에서 드러나는 기생들의 모습은 우습게도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정절녀(!)다.그러나 아마 실제로는 그 반대의 관계였으리라. )

저자는 전해오는 그런 조선 기생의 모습에 여느 식자들처럼 매혹되었고 그 근원과 현재를 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탐색하기 시작한다. 문학을 통해 환상적인 아우라가 구축되고 수많은 구전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정작 기생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은 이 남성 기득권 사회가 가지는 오래된(그리고 여전히 지속되는) 이중적 태도의 결과물일 것이다. 저자는 그런 열악한 정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해가며 때로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고 때로는 자기 발로 가서 문헌과 기록들을 확인하면서 전설에 역사와 구체적 형상을 붙이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히 조선 시대, 기생이라고 불렸던 존재들에만 맞춰진 연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자신의 몸을 매개로 살아남아야 했던 모든 여성들에 대한 현상학적 보고서다.

이 책이 단순히 흥미거리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가지는 대상에 대한 특별한 애정 덕이리라. 일본인이라는 태생적 측면이 그의 연구가 가질지도 모르는 오판의 여부를 의심케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저자는 타자이기에 객관적일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저술에 임했다고 보여진다. 도리어 문학 속에서 가장 환상화되었던 기생들을 바라볼 때조차 그의 시선은 냉정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계승이 가장 낮은 계급 형태의 유곽으로 체현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대해 그는 안타까워한다. 저자의 시선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일에 대해 매혹된 남성의 시선이 그렇듯, 판단에 있어서 모호한 모양을 드러내지만 적어도 그 매혹만큼은 진심이란 것을 면밀한 글쓰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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