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매춘부들 책세상총서 24
니키 로버츠 지음, 김지혜 옮김 / 책세상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익히 듣고 배워서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전복의 서술을 읽는 것은 즐겁지만 동시에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즐겁다고 하는 것은 지식의 쾌락에 비춘 것이며 당혹스럽다는 것은 그 사실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진실을 부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두가지 사항을 완벽하게 충복시키고 있다.

이제는 그리 흔치 않은 의견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매춘이라는 행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학자나 문화학자들의 영역뿐만 아니라 가장 직접적이라 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논쟁 가운데에서도 복잡한 화두였다. 저자는 페미니즘 진영의 일련의 그러한 보수 경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론을 펴고, 매춘이라는 행위에 익숙하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아도 남성 중심적 사회적 편견 속에 함몰되어있는 이들에 대한 조롱이자 통렬한 고발의 증거로 이 책을 서술해나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설명에 걸맞게 매춘이란 행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간은 근 3000년 너머를 거슬러 올라간다. 모계 사회였던 인류의 시작에서 우리가 이제는 매춘부나 창녀라고 부르는 이들의 원형이 얼마나 신성한 역할을 수행했는지 보여주던 저자는 소위 '문명'의 시작인 남성적 지배 질서의 출현과 확립이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여성들의 전락의 역사를 그리기 시작한다. 저자의 시각에서 여성이 매춘의 길로 들어가게 된 이유는 모계사회 적에 가능했던 성행위의 자연스러움과 신성함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 온전한 자아로 존재하기 위해 경제적 수단으로 전도된 결과이다. 그것은 이후 3000여 년간을 지속될 핍박과 차별의 역사에 맞서기 위한 여성의 선택이었고 그 증거로 저자는 '고매한' 남성들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태도로 매춘 여성들을 착취하면서 탄압했고 여성들은 그 과정에서 자율성을 갖고 자신의 존립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 남성들의 지배 질서에 도전하려 했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욕구에 의한 자아분열을 겪는 남성들과 삶에 대한 노련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시대를 살아갔던 여성들에 대한 풍부한 증거들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거칠게 몰아치던 1990년대 초반에 나온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은 그제까지 기존의 주류 페미니즘 진영에서 써왔던 부정의 방법론이 아닌 긍정의 방법론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저자는 여성성을 찬양하고 있으며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자각했을 때, 그 자체로 남성들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저자의 말마따나 '편견'일 수도 있고 전투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 권력에 의해 역이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성에 대한 대안의 부재와 매춘이라는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이 공격적 태도만을 취하던 이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남성적 사고관에 편입되어 세계를 바라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형 대립항적인 사고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허언에 비해서 이 책이 주는 여성적 삶에 대한 설득력과 자신감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25년 동안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에 절어 살아온 남자가 바라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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