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샐러드 5 - 완결
니노미야 히카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미묘하지만 자발적인 형태의 여성적 욕망과 수용자 입장에서의 남성적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던 니노미야 히카루가 만든 이 장편은 작가의 전작들에 비추어 볼 때 놀라울 정도로 금욕적이다. 그것은 전작들이 그 호흡의 굵기가 대체적으로 짧았던 것들인만큼 그 안에서 작가가 보여줘야 했던 욕망의 제전이 집중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넉넉해진 이 작품이 그런 강박감을 가질 필요야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작품의 성격에 영향을 준 것 또한 사실이겠지만, 여기 와선 섹스라는 행위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질만 한 시퀀스까지 보일 정도로 성격에 있어서 전작들과 궤를 달리 한다. '백치 여인'에서 보여줬던 여성적 욕망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일종의 환타지와도 같은 상황을 지독하게 현실적인 여성적 감수성으로 풀어나가는 냉정함을 보여준다. 그 결과,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동거라는, 당연하게도 쓰리썸을 비롯한 성적 상상을 동반한 쾌감을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이 (사람에 따라선 무척이나)환상적이었을 수도 있을 관계를 지탱해나가는 것은 끝까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 아슬아슬함이다.

등장인물인 미노리, 이츠카, 요코의 세사람은 마치 한 인물을 분열시켜서 만들어낸 캐릭터들 같다.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 또한 느끼면서 그렇게 되지 못 할 것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들 모두가 같이 있을 수 있는 특이한 공동체를 지속시켜 나가길 바란다. 이 이야기는 그 위태로운 관계가 빚어내는 긴장감을 방황하는 미노리의 시선으로 꾸준하게, 마지막까지 끌고 나간다. 상대적으로 서로에게 이질적인 인물군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들의 성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성공한 작가의 힘이다. 순정지에서 연재하는 섹스와 강도 높은 노출의 함량이 다분한 작품군을 가진 작가가 빚어내는 이 독특한 관계 또한, 작가의 작품들에서 상대적으로 빈약한 차이만을 가진 채 등장하는 우유부단하고 갈등 많은 남자 화자의 눈을 빌린 여성 욕망의 설득력 있는 표현이다. 결코 도식화 된 캐릭터들이 아닌 이츠카와 요코의 두 인물은 성격상의 분명한 상이함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피동적-능동적 여성 캐릭터의 양 극단에 각각 위치해 있음에도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미노리를 통해 사랑과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여성-사랑-집착을 구조적으로 설명하려 하는 복잡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작가 스스로가 내재하고 있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살아나서 얘기해주는 일종의 잠언과도 같다.

그런 작가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결말은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을 판단을 한 걸음, 뒤로 미룬 상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이 보여주는 관계는 단지 조금 변형되어 있는 상태일 뿐, 쌍둥이들과도 같은 세 사람은 그들 모두가 만난 시점에서 그리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내내 방황하다가 마지막에 와서 스스로의 욕구를 요코와 일치시킨 미노리가 보다 '남성적 시선'으로(그는 작품 내에서 간간이 보여지고 설명되어지듯, '너무' 따뜻한 남자다.)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발전된다면, 혹은 그의 욕구가 조금 헝클어지게 된다면, 마지막에 이르러 또다시 출발선에 선 세 남녀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모양으로 전개될 것인가. 이 이야기의 끝은 그들의 후일담을 보고 싶은 욕구를 은근하지만 분명하게 자극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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