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 - 판타지의 제왕
마이클 화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마이클 화이트가 쓴 톨킨의 삶엔 열렬한 사랑이나 모험, 돌발상황, 비극과 같은 의미의 단어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열심히 공부를 한 끝에 교수가 되고 학계의 권위자가 된 사람. 그리고 만년에 이르러서야 이후 잊혀지지 않을 문학 작품의 작가가 된 사람. 이 전기는 중간계라는 풍성한 상상력의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담담한 삶을 보냈는지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겪어내야 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었으며 반지의 제왕을 출판할 때까지 (실제 상황에 있어서든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그의 삶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반발하듯이 가지고 있었던 보수적 정신-안정에 대한 열망과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가 보였던 노력, 그 지위를 놓치지 않는 견실함, 그리고 톨킨 자신이 놓지 않고 있었던 사생활 노출에 대한 결벽증적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원형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비판하는 축에 섰던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처럼 반지의 제왕은 플룻에서 볼 때 마치 고대의 신화와도 같이 너무나도 고전적이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 안에서 선과 악은 명확하게 선이 갈라져 있고 인간 간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에 대한 성찰은 묘사되질 않으며 심지어 서투르기까지 하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 중세 영어의 애호자였던 톨킨이 그려내려했던 세계는 전쟁과 섹스와 기계가 모든 이들의 사고관을 지배했던, 자신이 겪어내야 했던 '현대'와 같은 그런 세계는 전혀 아니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내려진(특히 그가 살아온 '현대'와 결부되는) 모든 종류의 비유와 은유에 관련된 비평을 결벽증처럼 거부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철저하게 순수한 작품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그것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품어왔던 이상향의 구현인 동시에 역설적으론 존 로널드 류엘 톨킨이라고 불렸던 한 인간에 대한 타자의 긍정을 무의식중에 바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이미 타락해버려 더없이 부자유스러워진 세상에 대응하는 고전주의자 톨킨의 방식이었다.

활달하고 사교적이었던 동시에 고집 쎄고 폐쇄적이었으며 고대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방대한 이교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크리스트교적인 신앙의 흔적을 끼워넣을 수 있었던 이 사람은 환상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축복이겠지만, 그가 구축해낸 환상의 세계는 이제 그의 작품을 읽는 수많은 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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