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시대의 일상사 - 순응, 저항, 인종주의, 개마고원신서 33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수많은 나치를 다룬 책들을 기억해보자. 그 대부분의 책들은 나치 전범들, 시대적 기운, 당시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사회적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책들을 보면서 동일하게 느껴야했던 것은 정작 그 안엔 그 일련의 과정을 성사시키는 일을 한 '인간'에 대한 주목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책들은 마치 기계 부품과도 같은 사회적 시스템, 혹은 히틀러와 히틀러의 측근들을 조명하면서 이 거대한 비극의 원인을 거시적인 축에서의 해석 가능성만을 남겨둠으로써 그 시기의 풍경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오해를 만들었다. 이 책은 정반대로 그 역사를 현실적으로 존재하게 만든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든다.

어째서 독일 국민들은 나치에 협력했는가. 어째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철과 피의 국가가 '보통의' 시민들에게 동의되었는가. 우선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치 시대의 일상적 풍경이란 것들이 오해된 것임을 알려준다. 우리가 흔히 기록 영상과 매체들을 통해 아는 나치 시대의 독일 국민이란 나치에게 충성하며 모든 체제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재편한 금욕주의적인 동시에 광기 그 자체이다. 그런 독일 국민의 모습은 최소한의 판단력조차 상실한 비인간적인 형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후 독일에게 죄를 얹으려했던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간편한 해석의 단순화가 가져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여러 기록과 사료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나치 시대에 존재했던 반정부 운동과 일반 시민들에게 퍼져 있던 반나치 감정에 주목한다.

나치 체제 하의 독일은 결코 일사분란하지 않았다. 그 안에선 분명 망가져가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 있었고 나치에 대한 암묵적 부정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독일 국민들은 전쟁의 결과에 대한 희망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치 독일은 그 무리한 전쟁을 끌고 갈 원동력을 국민들에게서 뽑아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나치 정부가 추구한 전략적인 선전과 체제 개편(그것을 개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이 인간의 무력함과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슬픈 광경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표피적인 외양의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그 외양을 유지하는 데에는 당시 독일 국민들의 '합의'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의식적으로 깨어있지 않는다는 것이 가질 의미에 대한 우울한 기록이다. 나치 체제가 열등하지 않은, 말그대로 역사의 순차적인 흐름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물이란 것은 그 참혹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이루어지던 안쪽에서는 광범위한 모양의 지지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은폐되고 왜곡되는 과정을 겪은 엉성한 게시물이었지만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무의식적인 의지의 발현이 만들어낸 최악의 결과는 이후, 기억하는 한 인간이 영원히 지고 가야 할 족쇄를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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