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임권택.정성일 대담, 이지은 자료정리 / 현실문화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정성일의 (충분히 긍정적 인식 하에서의 긴 설명이 덧붙여진)질문을 받은 임권택이 반추를 한다. 그러고는 한마디 내놓는다.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정성일이 표현한 것처럼 임권택은 장인이다. 그는 스스로의 말대로 영화 만드는 법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그것이 살아가는 경제적 밑천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가 만든 영화에선 장인의 기운이 살아있다. 진정 영화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진정성이 있다.

이 두꺼운 인터뷰집은 예술가로서의 임권택이 아니라 장인으로서의 임권택을 살펴보는 작업이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이 작업은 예술과 기술의 구분에 대한 저 까마득한 시절의 논쟁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삶이 되어버린 영화에게 예술이란 이름은 타자(정성일)가 붙여주는 것이고 그는 임권택이 영화에서 썼던 기술적 정당성에서 그 해석에 대한 마땅한 근거를 발견한다. 임권택의 말마따나 정성일은 그의 영화들을 정리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하면서 임권택이라고 하는 궤적을 만들어 나간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과 삶에 대한 임권택 자신의 본능적인 반추이다. '먹고 살기 위해' 영화를 택했다는 것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진정성이 존재할 수 있는 말이 또 무어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감독 임권택은 자신의 영화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에게 영화는 직업이지 일일히 기억해야 할 숭고한 가치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내러티브 상에서의 도덕적 마땅함을 추구하고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완결성을 중시한다. 좌파적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던 원작을 뒤집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태백산맥>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노는 계집 - 창>에서의 결말이 자신답지 않게 그토록 가혹해야 했던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감독인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피해의식과 강박관념 속에서 살아야했던(그렇게 강요 받았던) 한 개인이 말하는 한국 현대사인 동시에 흥미로운 전후 한국영화 통사이다. 그것은 배게로 써도 실용적일 이 무시무시한 두께의 책이 가지는 또다른 강점이다. 놀랍게도 이 책은 서편제가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갱신했다는 정도의 지식만 알고 있는 사람이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 늘 동시대의 감독들(신상옥, 유현목, 김기덕)의 그늘에 가리워져 제대로 비평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자신의 80년대 이전 작품들을 회고하고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임권택은 자신의 눈으로 본 역사와 사회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애기한다. 그것은 2000년대를 넘어선 현재에 이르러서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영화 장인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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