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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역사 - 이룸휴머니티즈 003
장 프레포지에 지음, 이소희.이지선.김지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아나키즘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학문적 연구는 커녕 이슈적인 측면에서조차 가질 기회가 거의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축복이다. 가장 인류 지향적이면서 가장 오해되기 쉬운 아나키즘이라고 하는 인간 의식이 빚어낸 결과물의 한 분파에 대해서 이 책은 전혀 어렵지 않게 그 역사와 진행 과정을 통찰해 본다.
아나키즘은 그 어느 것보다 분명한 인간 욕구의 소산이다. 자유라고 하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누구도 당연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대안은 그렇기 때문에 계몽적이고 인류애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근본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이며 비타협적이다. 그들은 사상적인 결벽증 환자들이며 동시에 모든 의지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정신 상태를 보이고 있다. 방관적이면서도 통제적이고 국가에 저항하면서도 국가 존속에 대한 차선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여기서 아나키스트들은 무수한 분파와 사상적 경향을 가지고 소개된다. 그들은 하나 같이 같으면서 또 다르다. 그것이 완전한 자유의 결과물이라면, 이 이합집산의 공동체에게 내일은 있는 것일까.
아나키스트들을 기능론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 즉, 그 존재 자체가 필요악이라는 것. 그 증거로 이미 무수한 아나키즘 운동이 불러 일으킨 사회 제도적 변화들은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신천지를 꿈꾸는 이들이 작용하는 역할을 그리 단순하게 한시적으로 끊어놓는다면 그들의 존재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저 그들은 통괄적인 시야 속에서의 부품으로만 머무르는 것인가.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정작 아나키스트들 자신이 그리 생각지 않으리라.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실현될 인간의 미래이고 그 날을 위해 영원히 계속될, 완전한 자유를 향하고 있는 인간의 의지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행동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한 그들은 실패라는 말을 모른다. 미학적인 관점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 자신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일을 해낸 순간,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행동함으로써 정당함을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