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리처드 오버리 지음, 류한수 옮김 / 지식의풍경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가지고 도출해내는 객관적 결론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미덕을 충분히 지키고 있다. 저자는 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있었던 독-소 간 전쟁의 전후를 엄청난 양의 사료와 평가 논문들, 문학, 증언들을 동원해서 20세기에서 가장 압축된 지옥 같은 시간이었던 그 일련의 사태들이 어떻게 벌어지고 어떻게 은폐되고 어떻게 오해되었는가를 추적한다. 살짝 잘못 바라보면 손쉽게 틀어져버릴 수많은 민감한 사안들과 자료를 통한 조심스러운 추정 속에서 저자가 이 전쟁을 바라보는 커다란 두 개의 축은 '민중과 전쟁', 그리고 '스탈린과 전쟁'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거대한 전쟁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독자들이 납득해야 할 두 가지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이해하기 힘든 러시아 민중과 이해하기 힘든 스탈린이라는 두 아이콘이다. 전쟁의 경과 자체가 당시 기준으로는 전혀 예상치 못 한 것이었기에 저자는 당시 사람들이 내린 일반적인 의견들(날씨, 전선의 이동, 보급로의 확장, 히틀러의 변덕 등등)을 무시하고 대부분의 역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혹은 못한) 저 이해 불가능한 두 아이콘이 전쟁에서 한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그럼으로써 내려지는 결론은 몇 마디 말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상황들의 총체이자 기후나 독재자의 변덕 같은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의 거대한 의지이다.(그런 의미에서 조선 일보의 서평이 내리는 강조점은 그 근거가 무척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자국민에 대한 스탈린의 무자비한 테러로 시작된 전쟁 전 시기에서부터 시작된 서술이 지옥이 내려온 것 같았던 전쟁이 끝나고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의 탈신화화 작업에까지 이르러도 그리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은 우리는 그 이후 반세기 넘게 일어난 일들을 잘 알고 있거니와 그 연속되는 일련의 어둠 같은 세계에서 쉬지 않고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계속 발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스탈린은 스스로 공포에 사로잡혀 민중에게 죽음과 공포를 선사했고 나치 독일은 자신들만의 제국을 이룩한답시고 도륙에 미쳐 날뛰었다. 전쟁의 시기가 끝난 다음 흐루시초프에 의한 탈 스탈린화가 권력 이동을 위한 정치적 목적을 띄지 않는다고 보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으며 그 과정에서 은폐된 전쟁 전, 중의 소련에 대한 진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 많은 시간과 사고들을 겪으면서도 정작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폭력과 오해의 역사 속에서 그나마 분명한 답을 대라면 흔히 쉽게 말하는 것처럼 잡초처럼 살아남는 민중이라고 해도 그 흘린 피가 너무 엄청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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