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들의 밤
오시이 마모루 지음, 황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블러드 프로젝트의 가장 처음 작품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은 48분짜리 중편의 형태로 완성된 (당시로선 획기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블러드라는 세계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미디어 믹스를 통한 장르의 다양화와 그 유기적 관계로 오시이 마모루로선 꽤나 야멸찬 프로젝트였다 싶은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소설판인 이 물건은 블러드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오시이 마모루가 만들어내는 인간 환멸의 완성판이라 불러도 좋을 이 세계의 러프 스케치쯤 되는 역할을 담당하는 소설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근거를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1969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정점이었던 시간을 배경으로 서구 철학사에서 유전 이론까지 아우르면서 음모론의 색채를 더하는 그의 서술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짐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 목적을 위해 심심한 이야기 구조와 소설적인 표현으론 어색하게 느껴질 법한 상황들을 무릎써 가면서 만들어낸 두 축으로 이뤄진 장문의 토론식 대화는 애니메이션에서 설명해주지 않았던 블러드 세계의 총체이자 오시이 자신이 가지는 인간론의 바탕을 말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