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1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창식 옮김 / 창해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라는 인물에 대한 끝간데 없는 매혹을 보여줬던 토마스 해리스의 서술은 이 '한니발'에 와서는 제목 그대로 거의 경배에 가깝다. 여기서 나타나는 한니발 렉터는 시리즈 중 어느 작품에서보다- 죽음을 관장하는 것의 외적인 측면에서 - 더 자세하게, 매혹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 행동 하나하나는 마치 인간을 벗어난 존재가 보통 인간에게 자신의 찬란함을 조금씩 비추이는 행위와도 같이 느껴질 정도다. 괴물. 그렇다. 집시 여인의 공포처럼, 이탈리아 갱의 문법에도 맞지 않는 문장으로 원초적 감정의 발현으로 표현되던 외경심처럼 그는 여기서 타인의 입을 빌려 악마, 혹은 괴물과도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그를 잡으려고 하는 자들은 실패하고 죽어버리며 한 경관의 인생이 걸린 문제가 그에겐 저녁에 무슨 곡을 연주할까 하는 고민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치다. 그를 통제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에게 고통을 주려했던 메이슨은 계획을 제대로 실현해 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끝나버린다. 더군다나 그렇게도 서로에게 매혹되어 있었음에도 이뤄질 수 없었던 클라리스와는 결혼까지 이른다. 모든 법칙은 그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작품 속에서 한니발 렉터는 모든 것을 무력화 시키는 절대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어째서 제목이 한니발이겠는가.

전작 '양들의 침묵'에선 클라리스의 의식 멀리서 끊임 없이 들려오던 양들의 울음소리를 잠재우는 과정으로서 렉터와 클라리스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 '한니발'에 와서 그녀는 렉터와 자신의 의식을 완벽하게 일치시켜버리고 그의 세계에 자신을 넣어버린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옛굴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양들은 울음을 그쳤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과거와 아버지에게 시달려야 한 것이 여기서 마침내 치료된다. 또한 그것은 렉터와의 교감을 통한 것으로 역시 과거와 자신의 여동생에게 매달려있던 그를 끝없는 의식의 공간에서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끝 부분에서의 반전 - 반전이라고 말해두자 - 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이전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렉터와 클라리스의 관계의 급격한 진전을 설명한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면 클라리스의 주변에 아버지의 대체들은 모두 세상에서 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이상 동요하지 않는다. 이미 그녀에겐 아버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렉터의 의식의 궁전 안에서,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의식의 궁전 속에서 그들은 살아있었고 그리고 끊임없이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녀에게 더이상 세계는 옛시절의 기억만으로 지탱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에게 건네진 렉터의 초대는 그렇게 유혹적이고도 마땅한 필요였던 것이다.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