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 팝
무라카미 류 지음, 김지룡 옮김 / 동방미디어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류는 '나는 글로 일본을 붕괴시키고 싶었지만 오히려 현실의 일본이 붕괴되어 가는 속도를 내 글이 따라잡지 못해 좌절감을 느낀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의 의식을 반영하듯 지독하게 탐미적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데뷔해 80년대 말,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으로 가상의 '붕괴'를 그렸던 그가 90년대에 들어와 보여주는 모습은 그런 좌절의 방법론으로서의 풍속에의 천착이라 불러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 결과물 중 하나인 이 '러브 & 팝'은 그 제목 그대로 대단히 '팝'한 소설이다. 히로미의 시선으로 비춰진 원조교제 세상, 하루 동안의 이야기. 류는 이 작품을 위해 원조 교제를 하는 아이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을 비난할 근거를 못 찾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질타라고 한다는 게 '너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슬퍼할 누군가가 있다'라는 말이다.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꽤 우스웠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그의 남성 인물들의 모양새는 영락 없는 '슬픈 남자'다. 그들은 섹스 때문에도 슬프고 가정사적으로나 정신적인 결함으로서도 슬프다. 마치 남자라는 동물이 처음부터 슬픈 짐승인 것처럼 그의 작품군에서 꾸준히 묘사되 왔다는 걸 기억하면 이건 확실히 동어 반복이긴 하다. 이것은 류가 가지는 남자라는 생물에 대한 가치관은 상당히 컴플렉스적이란 것을 드러낸다.(물론 그는 에세이를 통해 이런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 버렸다.') 그는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에서 농경 사회가 망쳐버린 인류 본연의 수렵성을 그리워 하고 일련의 SM물에선 여성 지배자에게 밟히면서 즐거워하는 남성들을 꾸준히 만들어놓는다. SM이 관계 역전을 통한 쾌감의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그가 이 소재를 통해 그의 작품이 남성성에 대해 지니는 욕구와 자학을 드러내는데 사용한 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그래, 좋다. 뭐라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냐. 사람의 가치관이란 다단히 틀린 법, 무슨 구구절절 쓰잘데기 없는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남성성에 대한 그의 식견과는 상관 없이 이 작품에서 실망했던 것은, 그가 만들어낸 세계에 현실성이 없어보인다는 점이었다. 작가 특유의 페티시즘적 경향이 유난히 드러나는 일련의 묘사들 속에서 간간히 그려지는 히로미의 모습은 흡사 박제품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 이런 작가의 태도에는 은근한 도덕적 경향과 그의 말마따나 비난할 근거를 찾지 못한 대상에 대한 매혹이 깔린다. 그러다보니 우리 죄가 없지만 있을 듯도 한 여고생 여왕님의 상대가 될 남자들은 계속 슬퍼만 하고(그러다 헛소리나 늘어놓고) 그 속에서 작가의 의식처럼 헤매고 있는 히로미는 윤곽이 보이지 않는 그림자 속의 인물처럼 여겨질 정도다. 이 작품엔 류의 좌절로 인해 벌어진 태도의 어중간함이 있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 작품이 재밌었다면 소재 자체가 주는 기본적인 흥미와 남자들의 '어리숙한' 태도에 대한 동질감, 그리고 이와 결합된 식자로서의 체면 치레가 동반 가능한 모호하고도 '고급스러운' 묘사들이 가져오는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꽤 즐겁게 읽긴 했지만 마치 제목처럼, 그리 기억에 남아버리지 않게 된 것도 유감이라 해야 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