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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No Country for Old Me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매체에서 쏟아졌던 상찬들과는 대비되게, 어째 내 주변에서 이 영화를 재밌게, 혹은 흥미롭게 봤다는 친구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고 대개는 별로였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네들이 [트랜스포머]랄지와 같은 것에 열광하는, 이런 류와는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취향에만 전념하는 친구들은 아니었고 되려 따지자면 이런 쪽 취향에 가까웠는데도. 어쩌면 상찬들이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놨던 건지도 모르겠고,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친구들의 반응이 기대치를 뚝 떨어뜨린 것에 도움을 받은 바도 있긴 하지만, 이 영화가 굉장히 좋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궁극적으로 위로 받을 수 없는 잔인한 세상에 대해 무겁고 예리하게 설파한다. 무겁다는 건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주제를 다루는 묵직한 연출에서, 예리하다는 건 정서의 가차없음과 그를 표현해내는 형식적 세련미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 잔인한 세상에 대한 통찰은 삶과 뗄래야 뗄 수 없게 너무도 밀착되어 있기에 씁쓸함은 필연적이며 죽음외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결말은 타당하다.
그 지독한 허무함과 해결할 바 없는 현실. 하지만 이 영화를 포스트 9.11의 연장선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미국영화의 어떤 결정체로 보는 건 코엔 형제의 부인도 있거니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국소적인 관점에서의 지적이 아닌가 싶다. 굳이 여기에 9.11을 불러오지 않아도 인간의 삶은 항상 그랬다. 생각해보면 9.11도 끊임없이 이어져 온 정치적 인과의 한 부분이었지 않은가. 그리고 포스트 9.11을 설명하기 위해 굳이 1980년대 초반을 불러온다는 것이 억지스럽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코엔 형제의 진화과정에서 파생된, 보다 개인적이고 보다 궁극적이며 순환적인 주제를 캐치한 결과물로 봐야 할 것이다.
불확정적이고 불안정한 공식으로서의 삶은 영화 속에서 죽음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던 안톤 쉬거마저도 달아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 현실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싶어하)는 이에게조차 서슴없이 찾아듦으로써 자신의 잔인한 속성-공포와 허무-을 완성시킨다. 어떻게보면 그것이야말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제시하는 삶에 대한 직설적인 해결법이 아닌가도 싶다. 누구도 피할 수 없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찾아올 알 수 없는 신의 선물-바로 죽음이라는 표현으로 말이다. 이 영화는 그 오래된 순환 과정에 대한 짤막하지만 과격한, 그리고 미려한 미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