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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텔의 기분 3
히로야 오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물론 제목의 반은 농담이고. 그런데 사실 [메텔의 기분]은 설명하기 버거운 만화다. 오쿠 히로야의 포스에 눌렸다기보다는, 보고나면 일단은 뭐 이런 생각밖에 안 들기 때문이다. "아 거 섹스씬 한 번 거하네."
그런데 그게 완결인 3권 후반이 되야 나온다. 1, 2권과 3권의 발행 텀이 그리도 짧으면서도 3권을 연소자관람불가로 만들어야 했던 출판사의 딜레마는 이것 때문이다.
치유. [메텔의 기분]은 그 현대인들을 위한 고전적인 주제를 안고서 이야기를 풀어놓는(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골방이라는 이름의 영원의 동산에 눌러 살고자 하는 소년,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30살 먹은 15년차 히키코모리인 신타로를 일반인들의 사회로 장렬하게 끌어올리는 감동적인 갱생의 여정. 그러니까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를 유년기의 끝으로 데려가는 긴 여행의 안내인이었던 여자의 이름이 제목에 박혀 있는 이유도 뻔하다. 바로 하루카가 그녀의 역할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작품의 제목은 그녀의 기분, 그러니까 메텔의 기분인 것일까.
잠깐. 그렇게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오쿠 히로야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파악해 볼 수는 있다(아주 살짝 발을 내밀어 보는 정도로 하자). 작품 내에서 하루카의 마음 속은 거의 비쳐지질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그녀가 내리는 결정은 마치 메텔처럼 그녀를 불가해한 존재로 만든다. 그 불가해함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하듯 만화를 이끌어가는 신타로의 시선과 독백 속에서 그녀는 관찰자적 시점에서만 그려질 뿐이지 그녀의 행동양식이나 흐름에 대한 어떤 내면적인 묘사나 깊이있는 판단은 제시되지 않는다. 이 만화의 제목은 그렇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의 역할은 메텔이고 구원으로의 인도자다.
한 발 더 나아가자고? 그렇다면 [메텔의 기분]에서의 시선이 철저하게 관음증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카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훔쳐보는 신타로나, 심지어 그 디테일한 섹스씬까지. 이 만화가 히키코모리의 복잡한 속사정과 깊이 있는 통찰, 그리고 그 해결을 진지하게 그려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한다면 헛발질하는 거다. [메텔의 기분]은 순수하다 싶을 정도로 관음증적인 영역에서만 놀고 있다.
아, 결국 낚여버렸다. 오쿠 히로야는 이런 작가였다. [간츠]도 그렇고 [헨]도 그랬다. 그의 만화가 괴이하게 느껴지는 건 폭력과 섹스라는 표현상의 가장 자극적인 요소들을 마구잡이로 거침없이 풀어놓으면서도 그 안에서 괴상한 돌발지점들을 본능에 가깝게 심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돌발지점들은 대개 독자의 기대치를 부숴뜨리고 조롱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성립된다. [메텔의 기분] 또한 마찬가지다.
이 만화는 치유물처럼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오쿠 히로야의 만화다. 심지어 3권의 하일라이트이자 많은 이들이 히키코모리 치유=섹스라는, 작품이 그나마 분명하게 전해주는 당위적 공식(이 자체가 블랙유머일 수도 있다. 치유로서의 섹스가 이토록 황망하고 갑작스럽게 쓰인 경우가 어디 있었는가)이라고 여겨지는 것마저도 의도된 착각이며 독자를 배신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니 오쿠 히로야의 만화적 본능을 신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반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반드시 엿먹게 되리란 걸 확신한다면), 순차적인 흐름의 스무스함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여기 3권에서 독자는 말미에 자리한 두 번에 걸친 뒤통수 치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무례함이야말로 오쿠 히로야의 작가적 능력이며 그의 작품에 긴장을 불어넣는 신선하고 즐거운 부분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한 철저한 서비스가 갖춰진 유희로서의 그의 만화를 즐기는 이들의 독해는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법은 작품을 그저 허무스럽기만 한 영역에 곧잘 들여놓는 지름길이기도 했으며 바로 그런 패스트푸드성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를 철저하게 즐기는 이라면, 그리고 오쿠 히로야의 줄기찬 육덕 취향을 지지하는 이라면 이 서론이 다소 긴 인스턴트 치유물 또한 가볍기 때문에 충실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쪽 입장이라면 [메텔의 기분]은 [간츠]를 [대부]처럼 느끼게 만들지도 모른다. 적어도 [간츠]는 길기라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