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어 4 - 완결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심해어]는 1권에서 바닷속 깊숙이 틀어박혀 사는 듯한 존재인 토미오카의 얘기를 꺼내고, 이어서 조커에 반한 여자, 하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커는 변칙적인 캐릭터를 뜻한다. 그는 세상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존재이며 그런 열외자인 동시에 세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캐릭터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쪽 역할을 하든 간에 조커는 기이한 존재다. 생긴 것에서부터 역할까지 세계의 이상성을 의미하는 존재에게 반한 여자인 하다가 조커와 비슷한 생김새에 이단적인 아우라를 가진 토미오카에게 반한다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까 그 감정의 흐름 자체는 이상한 바가 없다.

그런데 아이콘으로서의 조커의 속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심해어]에서 토미오카의 마음 속을 너무도 확실하게 잘 알 수 있다. 사실상 드라마의 기점은 그의 심적 갈등과 독자의 시선을 동일시할 때에 가장 극적으로 일어나곤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토미오카-조커의 마음 속을 읽는 즐거움으로 [심해어]를 읽어냈던 것일까.

[심해어]는 삶의 변칙적인 불안함을 보여준다. 여기 밑바닥 인생들의 현대적인 인생담 속에서 폭력과 공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이건 후루야 미노루의 전작들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던 바, 그의 작품들이 익히 지향하던 껄쩍지근한 영역의 연장선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정말로 이상하게 여기는 건 하다라는 캐릭터다. 그녀는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갖고 있는 열외자다. 여기서부터 그녀가 가지는 모종의 힘이 부여된다. 구원이라는 가능성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는 작품 내에서 깊숙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그녀는 토미오카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한다. 단지 그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심해어]에서 알 수 없는 힘으로서의 진정한 조커는 바로 그녀다.

그녀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것이 이 마지막권인 4권에서다. 사실상 그녀는 그녀의 존재와 역할로 인해 갈등하는 토미오카에 의해 4권 내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애초에 부여됐던 힘에 쐐기를 박듯 더 강력한 권한이 붙고, 속을 알 수 없었기에 4권을 스릴 있게 드라이빙할 수 있었던 그녀가 결국 간단한 선택을 함으로써 끝을 맺는 결말부다. 이 결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맥이 빠지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이야기 이후도 어느 정도 만들어내는 게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선을 긋는다. 어쩌면 여기서 선을 그어야 그가 이상적으로 바랬던(그러나 서사적으로는 안타까웠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을테니, 아마도 여기서 더 나아갔다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은 파국이라는 끝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더이상 토미오카는 변할 바가 없는 상태에 도착했으니까.

이 마지막에 심각하게 실망감을 느끼는 이들은, 아무래도 토미오카에 자신을 대입시키거나  온전히 그의 시선만으로 [심해어]를 이끌어 온 이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그는 몇가지 고민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실로 무력하게 현실에 굴복한다. 굴복이란 말이 여기에 소용 가능한 단어라면 말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면 이 이야기의 끝 다음으로 토미오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어있다(이 부분에서 이런 상황이 되도록 끌고 온 과정과 관련하여 작가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겠다). 기껏해야 지금까지 해왔던 생활의 반복뿐이다. 그 연장을 우리는 과연 즐겁게, 혹은 3권에서까지처럼 흥미롭게 볼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그저 존재에의 지향만을 선택함으로써 1권 초입에서 시작했던 세계와의 접점을 위한 지향성을 포기하고 진짜 심해어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이미 그는 거창한 의미에서의 세계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우울한 결말인지 아닌지는 보는 이가 판단할 가치가 있다. 이 마지막은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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