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이 아니라 11시에 일어나보니(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한시간이나 일찍 앞당겨서 잠에서 깨어야 했기 때문이다) 엉뚱하게도 벽에 걸려있는 12월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다.. 원래대로라면 저 달력의 숫자가 아직  9월에 맞춰져 있어야 할텐데.... 나는 9월달 이후로 달력을 본 일이 없거니와 뜯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문득 깨어나기 전까지 꿨던 꿈이 생각났다. 그 꿈에서 난 어느 인기없는 고교 농구단에 귤을 납품하는 사람이었는데 내 밑에 조수를 한 명 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수는 흑인이었고 이름은 밥이었다. 밥은 마음씨가 착한 흑인이라 니거라고 놀려도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약간 비틀린 인격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밥은 놀랍게도 뉴욕메츠의 전 멤버였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한국땅까지 와서 내 밑에서 귤을 파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어있었다. 흑 밥... 어쨌든 밥은 천성이 인격자이고 성실한 청년이어서 열심히 귤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구단에서 연락이 왔다. 분명히 귤을 주문한지 세시간이 지났는데 밥이 아직 도착을 안했다는 것이다. 나는 밥이 무슨 사고라도 당했을까봐 그리고 구단이 귤 납품을 더이상 받지 않는다고 할까봐 걱정하면서 홍대 거리에서 밥을 찾아봤다. 역시 아무리 인격자라도 맑스나 조지 워싱턴처럼 때론 욕망에 굴하는 경우가 있는 법, 밥은 귤배달을 잠시 미루고 나이트클럽에서 열심히 땐쓰를 추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밥에게 화가 났지만 이왕 늦은 거 어떻게 하겠냐며 밥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했다. 그랬더니 밥은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잘못했다고, 지금부터라도 귤배달을 반드시 완수해보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바마를 닮은 밥의 명연설에 감동하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회개해서 우리의 귤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한없이 미천한 천민들과 우민들을 상대로 인생의 승리자처럼 굴어보자고 제안했다. 밥은 내 말에 동의했고, 그래서 나와 밥은 같이 귤상자를 들고 구단에 갔다. 일단 사고를 친 건 너니까 난 정문 앞에 숨어있을테니 밥더러 알아서 하라고 했다. 밥은 귤상자를 들고 들어가서 직원들에게 웃는 얼굴로 귤을 하나씩 쥐어주는데 직원들이 모두 여자였다. 그리고 모두 안경을 썼으며 모두 댕기머리를 하고 모두 마빡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모두 밥에게 친절하게 웃으면서 귤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난 질투도 나고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건지 싶어서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 경기는 대체 언제 끝나느냐고 웃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누군가가 경기는 벌써 끝난지 오래고 귤을 잘 받았으며 밥만 남기고 돌아가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달력을 뜯어서 12월자 달력이 보였다. 그 부분에서 난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군, 하고 납득을 하고 다시 달력을 보니까 오늘이 12월 23일이다. 세상에, 저 저주받은 성자들의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걸 잠에서 깰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니. 나는 더없이 초조해진 마음으로 부팅을 하고 GGPO에 접속해서 스파 서드 포럼으로 들어갔다. 요즘 GGPO는 유난히 사람들이 몰려서 접속률이 개판이 된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첫 캐릭터는 션으로 골랐다. 항상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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