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23분이었다. 아직 세상은 가로등 장식들이 달린 새까만 어둠 속이었고, 나는 가까스로 한시간 정도 자던 중 튼튼이의 보챔에 깨서 그 녀석을 들고 나와 아파트 현관 앞에 막 내려놓은 참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도로에서 3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즈음에 억지로 만들어진 듯한 텃문을 두고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난 그때 요란한 댄스 음악을 울리며 길가에 막 주차하는 폴크스바겐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논노 겨울 특집에 실릴 법한 패션으로 차려입은 여자가 한 명 나왔는데, 주황색 불빛에 비춰져서 세월의 흔적을 만들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게 보이는 얼굴의 화장이 인상적이었다(물론 그녀는 법적 미성년자의 나이를 뛰어넘은지 오래지만 태어나길 엄청난 동안이라 그런 노력을 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로등 빛은 그녀 손에 들려있던 만원짜리 묶음도 비춰줬다. 세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녀는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으로 튼튼이와 함께 멍하니 서서 보고 있던 나를 발견하더니 텃문으로 오다가 멈추고는 돌아서 잰걸음으로 가기 시작했다. 난 선량한 사람이지만, 추운 새벽에 실업자 수염을 기른 채로 개와 함께 나와있던 낯선 남자를 돈묶음을 들고서 따뜻하고 신나는 폴크스바겐에서 내리자마자 봐야 했던 여자의 심정을 생각하니 그녀가 도망친 것도 이해가 됐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개를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뭐 어쨌든.
그녀는 그렇게 빙 돌아서는 저 멀찍이, 우리 아파트의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군, 싶어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