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3집 Goodbye Aluminium [재발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노래 / 미러볼뮤직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와 우주를 꿈꾸던 소년은 이제
남한의 신용불량자
나만의 잘못은 아니야
그래도 갚아주겠어
쪽팔리니까

 

달빛요정의 노래는 꾸준히 끝내줬다. 러닝송과 루저 정서, 귀에 찰싹찰싹 달라붙는 멜로디메이킹과 절묘한 노랫말에 있어서 그의 노래들은 줄기차게 A급 수준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보장하는데 이번 앨범은 스완송(이 될랑말랑 하는)에 걸맞게 거의 최고로 끝내준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쓰레기 같은 노래'라고 자학하지만 이정도 수준을 쓰레기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대중가요 언더락씬 노래들은 쓰레기 끄트머리에서 꿈실거리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거겠다. 비루한 자신에 대한 비웃음과 세상을 향한 원망, 그리고 자학 끝에 지하로 숨어버리려는 결론까지, 스스로 위악적이라고 표현한 이번 3집은 노러브송 컨셉을 꾸준히 따라가며 전 앨범들을 뛰어넘는 패배자 정서를 직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슬프게 다듬어냈다. 가내수공업 싱글의 거친 질감에서 벗어나 앨범용으로 쌔끈하게 프러듀싱된, 제목부터가 노래의 성격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는 '달려간다'가 컨셉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색을 발하고 있긴 하지만 닭배달 아저씨를 비롯한 자신의 얼터에고들로 만들어낸 나머지 노래들은 좌절과 회한의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선보인다.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
주공 1단지 그대의 치킨런
세상은 내게 감사하라네
그래 알았어
그냥 찌그러져 있을게

 

물론 그 길은 하향나선처럼 느릿하게 축축 기어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왔던 달빛요정의 노래들을 생각해보자. 절절할 정도의 자학은 그만큼 섬세한 촉수 끝에서만이 파생가능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그의 노래들은 세심하고 달콤해서 쓰리게 아름답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그는 자신의 걸작 목록을 또 한번 갱신시킨다. 굳이 복잡한 설명은 필요없다. 그가 만든 노랫말의 서사적 절묘함과 독한 유머를 품은 뉘앙스의 미묘함과는 대비되게 그 노래들은 항상 스트레이트 펀치였으니까. 그리고 이번엔 정말로 여러 번 먹여준다. 4번 트랙 '도토리'에서 '고기반찬이 좋아'를 말할 때, 비굴할 정도로 능글맞게 발산되는 생존욕구의 절절한 뉘앙스, 가히 살 떨리게 만들 것이다(여러가지 의미로).

 

아무리 버둥거려도
먹고살기가 힘들어
그 알량했던 자존심을
버릴 때가 온 건 가봐

내가 세상을 비웃었던 것만큼
나는 더 초라해질 거야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청춘을 단 하나에 바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했을 뿐

 

이 앨범의 길고도 노골적인 홍보문구(아마도 달빛요정 본인이 손을 봤을 듯한 매끈한 센스가 느껴지는)를 보고 당혹스러웠던 이가 꽤 됐을 듯싶다. '행복한 사람은 듣지 마세요.' 그러나 이 말은 시류를 명민하게 노린 감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사람은 확실히 별로 없는 거 같으니까. 그러니 이 실패한 음악 노동자의 노래를 들어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위로 받을 수 있게.

 

나만의 왕국
나의 청춘과 사랑에
나만의 노래였던 녀석들아
이제 세상에 뿌려져 누군가의 순간이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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