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진실씨의 죽음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단순하게 그녀의 영향력 측면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바이겠지만 역으로 생각하자면 그건 그녀가 얼마나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하는 영상매체와 밀접한 스타였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녀를 '보아왔다.'
그녀의 작품 궤적은 그녀의 실제 삶의 흐름과 닮아있다. 물론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우리가 그녀에게서 발견하길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진실이라는 아우라는 입지전적인 길을 걸어 CF스타로 시작된 젊었을 적 그녀의 전성기 때나 나이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나 그녀의 삶과 맞춰져서 형성됐다. 어느새 매체를 통해 생산된 상품과 실제 삶이 구분되지 않는 영역. 올림픽, 형식적 정권 교체 이후 소비문화 폭발의 기폭제로써 기다리고 있던 1990년대에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보다 상업적으로 진화되면서 향후 드라마붐의 장기적인 축이 될 트렌디 드라마의 도래와 더불어 깜찍발랄한 문화상품으로 완벽하게 구성된 공주님으로서의 최진실을 보았고, 2000년대를 넘어선 스캔들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기어이 일어서고야 만 악바리 아줌마 최진실을 보았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에서 찍은 것들은 꾸준하게 그녀 삶의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녀가 일련의 드라마(모든 자기발현적 형태의 영상물들)에 나오는 역할에 자신을 맞출 필요는 거의 없었다. 성공적이었던 예들에선 그녀가 드라마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거의 항상 그녀를 따라왔다. 드라마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소비했다.
그래서 그녀가 실제 삶과 자신의 부산품들을 구분해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스포츠신문과 인터넷은 그녀의 모든 것을 쫓았고 캐냈다. 프라이버시의 노출과 상업적 추락, 그리고 심지어 부활까지도, 그 모든 것들은 그녀가 노력했던 것만큼이나 열망하는 상태와의 커다란 이격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삶 자체가 우리가 관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절망의 중요한 이유는 격차다. 어떤 현상, 어떤 상황, 어떤 모양 등등의 고정되었던 상태에 대한 현재와의 균열. 고정된 비교대상을 어떤 형태로든 설정해냈을 때, 그 이후 지속되는 상태로서의 격차는 마음의 붕괴를 가져온다. 시공간상 어느 시점에 서 있으면서 확인됐던 무언가가 다른 시공점에서 형편없이 몰락해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것은 허무와 좌절, 혹은 그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단어들이다. 신데렐라는 어느새 사채업자로 변해 있었다. 그 둘 다 그녀 자신이 아니라 그녀를 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는 데도 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이란 모델에서 스스로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텔레비전과 함께 살아왔던 수십년에 이르는 세대들에게 이 사건은 광범위하게, 그리고 깊게 다가온다. 그녀는 끔찍하게 사랑받고 있었다. 그정도의 비난과 함께.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건 그녀 입장에선 그 어떤 것도 떨쳐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잔인한 이야기다. 아주 현실적인 트루먼쇼. 바로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