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리 숏케이크 Strawberry Shortcakes - 합본형 애장판
나나난 키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도시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여자들 이야기. 그러나 딱히 그들이 같은 자리에서 얽히는 이야기로 묶여 있지는 않다. 그들중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는 친구 사이인 치히로와 토우코 두 사람. 나머지 둘인 사토코와 아키요는 부딪힐 일이 없는 이들이며 실제로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들로 진행된다. 심지어 목차는 각 캐릭터를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까 [스트로베리 숏케이크]는 도시와 사랑과 고통이란 키워드로만 묶인 철저한 타인들의 이야기다. 완전하게 단편집도 아닌 것이, 이 불편한 형태는 왜 그러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철저한 타인들을 한자리에서 묶어낸 낯설고 거친 구성은 되려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을 것 같은 이 타인들의 이야기가 광의적인 차원에서 공명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들은 미묘하게 반복된 같은 꼴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나난 키리코는 삭막하다. 그녀의 그림은 미니멀적이고 도시적인 삭막함을 안고 사랑과 이별과 그에 따르는 고통에 대해 계속 얘기해왔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에서 가장 강렬한 아이러니가 발산되는 부분은 바로 그녀가 만든 모노톤의 세계 속에 자리한 주인공들이 미소를 지을 때다. 흔한 유행가 가사처럼, 그녀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지나치게 부드럽고 예쁘장해서 동시에 공허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웃음을 보는 이는 깨닫게 된다. 그 인물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며 기만적인지. 그래서 항상 그 텅 빈 웃음은 불길함을 간직한다. 무언가 뒤틀려가고 있다는 불길함. 그리고 [스트로베리 숏케이크]는 시작한지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 바로 그 웃음을 보여준다.

[스트로베리 숏케이크]는 그렇게 뒤틀리기 시작한 이들이 아니라 이미 비뚤어진 이들의 도중을 곧바로 보여준다. 공허라는 괴물의 입에 담긴 이들은 어쩔 줄 몰라하거나 자살을 꿈꾸거나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나선의 끄트머리에 선 이들.

그리고 모두가 아파하고 모두가 빗나간다. 어떤 이는 후회로, 어떤 이는 욕망으로, 어떤 이는 머뭇거림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선택으로. 슬픔이 넘쳐난다는 걸 청승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스트로베리 숏케이크]는 그 청승을 냉정하고 건조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신파극의 틀을 탈출해낸다(사토코라는 장치가 그렇다). 어떻게보면 [스트로베리 숏케이크]는 그 제목처럼 짧은 시간을 위해 존재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웃으며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얘기하다가도 다시금 비슷한 고통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반복하고 또 반복하지 않는가. 그것이 현상이며 또 마치 감기약처럼 그에 대한 위로가 가끔씩 필요도 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스트로베리 숏케이크]의 짤막하고 효과적인 기능. 기간한정 해피엔딩.

그러나 정말로 [스트로베리 숏케이크]는 335페이지 내에서의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독자들이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끔 친절한 배려를 한 나나난 키리코는 네 명의 여자들에게 각자 구원을 선사해준다. 그래서 처음처럼 여전히 빛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도시 미궁 속에서 그들은 행복이라기 보다는 만족을 얻게 된다. 그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그렇게 모두 무언가를 잃고 또 얻고서 이야기들은 차근차근 정리된다. 불길한 시작을 남겨놓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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