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성은 다음과 같다. 어딘지 부족해 보이는 열혈 리더 주인공, 육체노동계 전직 깡패 히로인, 브레인 역할을 하는 오타쿠. 배경은 학교. 그러니까 학원물.
이 조합을 처음 봤을 때 불안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일단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어설프게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이었다. 삐죽머리에 열혈이라는 설정이나, 노란머리에 성격 까칠한 체육계, 더군다나 안경 쓴 오타쿠라니. 작화마저도 특출나게 보이진 않고. 대개 이런 조합은 오덕 출신 작가인 경우 캐릭터성이 가장 강해질 수밖에 없는 오타쿠 캐릭터에게 이야기가 질질 끌려 가다 자폭하거나 상업지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할 때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흐지부지 굴러가는 것이 대개 볼 수 있는 최악의 경우다.
그러나 [스켓]은 쉽사리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그 방법론은 느슨한 듯하면서도 천연덕스러울 정도의 세계관 확립과 쉴새없이 쏟아지는 개그에 의해서다.
우선 [스켓]은 학교라는 무궁무진한 배경 안에서 캐릭터들을 확실하게 잡아놓는다. 비록 그 역할적인 비중의 균형에 있어선 아직은 다소 위태로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정쩡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생각되는 캐릭터군은 그 어정쩡함 덕분에 되려 균형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어정쩡함이란 정형화된 캐릭터에 있어서 부러 빠져버린 부분들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며 흐름의 완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부족함이다. 특히 리더인 보슨의 캐릭터가 잘 잡혔는데 집중력 빼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캐릭터란 점에서 덜어냄의 영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심지어 잘 보면 썩 열혈스럽지조차도 않은데, 가끔씩 열혈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무리가 없는 것은 순전히 그 캐릭터 디자인 덕이다. 말하자면 캐릭터적으로 이것저것 안으면서도 무리는 없는 괴이쩍은 포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예술계라는 설정은 아직은 좀 더 활용처를 찾아봐야겠지만.
그러나 [스켓]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표면적으로 보이는 소년만화적 역할론보다는 넘쳐나는 개그다. 사실상 [스켓]을 결정지어 주는 건 캐릭터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말빨의 물량전에 의해서다. 화풍에서도 미리 알 수 있겠지만 지치지 않고 나오는 개그는 이 작가가 [은혼]의 어시스턴트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는데(그러나 더 낫다), 여기서의 개그는 약간의 슬랩스틱과 대부분의 스탠딩 개그로 이뤄진다. 시시껄렁하면서도 센스가 넘치는 주고받기로 떠들어대는 세 인물들 사이의 수다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캐릭터들을 구축해내면서 동시에 어느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한다. 물론 그 일련의 개그는 독자에게 [스켓]의 잔재미를 일깨워주는 역할도 한다. 다만 끝없이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소소하고 잔재미적이라기엔 그 양이 상당하지만.
딱딱한 얘기만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스켓]은 복잡한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즐거운 학원활극이며 근래 보기 드물게 에너제틱하고 소년점프의 마이너 전통에 기대는 독특한 비틀기가 있는 만화다. 다만 인기순위가 바닥을 기고 있다고 하는 점에서, 현재 일본에선 4권까지 나와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