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락적인 시작은 IMF 직후로 돌아간다. 향후 사람들이 음모론에 충실하게끔 만들 수 있도록 다국적 M&A의 광풍과 함께 경제 성장 중추인 중산층이 완전히 박살나고, 징그럽게 레임덕을 치렀던 김영삼이 물러난 다음 김대중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망가지고 텅 빈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경제 파이의 강제적 확장이었다. 그것도 허수로 이루어진.

 

하여, 엄청난 수의 카드 남발이 이뤄지고 막대한 양의 정처 없는 돈이 말그대로 퍼펑~ 하고 생겨났다. 생겨났으니 써야지. 그래서 전국적인 인터넷망의 확대가 지시됐고(0과 1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넓은 영토, 유례없는 '인공적인' 공간의 파생!), 그에 편승해서 IT 벤쳐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허수로 만들어진 무주공산에서 너도나도 사업가가 되었고 너도나도 성공신화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빚쟁이가 되어갔다.

 

IMF 스피드 졸업을 위한 일종의 박카스 짬뽕 강장제였던 국민의 정부 약발은 막바지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수에 바탕을 두고 시작하여 결국은 동력이 다 한 벤처들은 비대해진 약육강식의 경제망 속에서 박살나기 시작했고 개인파산 통계는 끝을 모르고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또 고위 권력층의 레임덕. 이번에도 역시 비슷한 패턴이었다.

 

결국 그럭저럭 봄날 꿈 같았던 2002 월드컵도 치뤘겠다 4강 진출도 했겠다(히딩크를 중심으로 이뤄진 국가대표팀의 단기부양책 또한 어찌 그리 시대와 흡사한지) 엉망진창으로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암튼 그 다음으로 새시대 새물결의 희망과 착각을 안고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시작됐다. 그때 그제까지의 단기책으로 너덜너덜해진 시장은 소비의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과포화지방산 괴물이었다. 그래서 놈을 달랠 성장동력에 대한 동인으로서 제시된 것은 부동산이었다. 괴물은 그쪽으로 달라붙어서, 전국을 투기꾼들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미친듯이 올랐다. 대한민국의 땅을 다 팔면 미국을 살 수도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 무지막지한 괴물의 시작은 오래 전, 개발성장시대에서부터 비롯된 IMF 경제라는 파탄을 지워보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허상이 실재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었다. 박정희-경제신화라는 아이콘에서부터 시작된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느 것 하나 실질적인 반성따윈 이뤄지지 않았다. 오직 공허한 말과, 말 이후엔 쳇바퀴 돌아가는 것처럼 이뤄진 공범적 자리물림만 있었고 그 틈바구니에서 괴물이 태어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붙는 부피만큼이나 놈은 점점 통제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시스템과 개별 욕망들이 급가속하여 마구 뒤섞여서 누구에게 책임소재를 물을 수 있을 것인지도 불분명해진 채.

 

참여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이래, 부동산 붕괴 괴담이 이곳저곳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극단적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거품이 낀 지금 대한민국의 부동산은 붕괴하는 게 정상이며 수순이다. 그걸 막아볼려고 새로운 먹잇감-동력원(더이상 수도권 부동산으론 먹어치울 게 안 남은 괴물-허수가 자리할 공간)으로 제시됐던 것이 대운하였다. 그러나 얘기되는 바, 썩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번 정권의 수뇌부들을 위한 진정 순수한 의미의 단기책이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완전히 실패한 환율 정책은 소비 파이를 극단적으로 축소시켜버렸다. 하지만 지금껏 구축되어온 소비마인드가 완전히 사라질 리 없을 것이고, 그 부분에서 균열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것에 있어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이해가 가는데 그 생각 또한 이번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드러내는 또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으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거부하는 시기가 되면, 어떤 다수적 합의로서의 거대한 '착각'이 과연 다시금 동원될 것인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작업은 의외로 쉬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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