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순수하게 정치적 차원에서 아직도 진행중인 시위의 진로를 감탄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지난 주만 해도 시위는 갈 데까지 갈 정도로 격화되어 모든 상황은 곧 바닥날 연료통 기름과도 같은 운명으로 한창 달려가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지쳐 있었다.

이제 끝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그 지점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위의 새로운 동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위를 기동시키는 모든 에너지를 근원으로 돌려놨다. 사람들은 보다 차분해지고, 보다 끈질겨질 수 있게 됐다. 많이 외로웠냐고, 그래서 자신들이 위로해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이것은 썩 존경받긴 힘들겠지만 정치에 있어선 최고의 대가 중 한 명이었던 DJ가 파란만장했던 정치 인생을 통찰하면서 얻어낸 결론이다. 정치의 의도성, 순수성이란 기준은 모호하고 항상 유동되며 다분히 수용자 지향적이다. 그것은 정치란 것이 쇳덩어리를 설명할 때처럼 단순히 역학으로만 얘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한 총체적인 직관에 의해서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제단의 이번 참여는 의도성, 비의도성과는 무관하게 탁월한 수준의 정치적 폭탄을 다시금 시위대의 가운데에 심어주게 되었다.

물론 한계는 있다. 다시 찾게된 비폭력 평화시위라는 타이틀은 실효성에 대한 의문에 끊임없이 도전받게 될 것이다. 당장은 가톨릭 교계 거시적 관점에서의 순작용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지 모르겠지만 내부의 정치적 균열도 위험범위 안이다(바콩 등등).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미래에, 지금의 모습이 변질된다 하더라도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들이 얻어낸 정치적 가치는 이 이상 얻어낼 수가 없는 순도의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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