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이상 광화문에서 비폭력이란 구호는 힘이 제법 줄어들 성 싶다. 물론 명분으로서의 간판은 당분간 지속될 듯싶고 저쪽과의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면 힘은 붙겠지만 흐름이 본격화되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은 거친 본능과 목적성. 오늘밤으로 명분도, 반작용도 비로소 완연하게 준비되었다. 이제 진탕에서 같이 구르며 물어뜯길 거부하지 않는 개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으리라.
시간이 걸렸지만 수순이란 건 항상 시간과 작용이 필요한 법이니. 처음부터 나댔던 이들이 지지 받지 못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땐 아직 명분이 부족했다. 그래서 행동주의자들에겐 한숨과 조바심을, 회의주의자들에겐 냉소와 비아냥을, 정부에겐 공권력의 정당함과 언론플레이의 먹잇감을 소급하는 작용 이상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어쩔 수 없이, 대상에 대한 맹목적 악의를 가지지 않은 이의 입장에서 서서 고려해봐도 지금껏 이뤄진 그 모든 꼬이고 꼬인 과정에 대한 해결책으로써의 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그리 인정했다. 그리고 그 실질적 증거는 수많은 변명과 시간끌기와 도루묵으로 드러내보여졌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 방법의 과격함에 설마 그렇게까지야,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루동안 그 설마라는 우려를 메꿀 수도 있는 일말의 조각들이 던져졌다. 아주 비주얼적으로.
이상하지만 역사적 선례로 보아선 자연스럽게도, 이 흐름을 이끄는 주체는 일종의 자폭행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기에 그 자리엔 마지막에 본능과 힘의 대립이 남게 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