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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령 Day Dream 10 - 완결
사키 오쿠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드디어 10권으로 완결된 [저속령 데이드림]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시체 뒤지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시점이었던 어제, 아키하바라에서 어떤 오타쿠에 의한 대낮 참살극이 벌어졌다. 지난 세기말을 열어제꼈던 악령들은 여전히 저 사회를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저속령 데이드림]은 명백히 저 1990년대 말의 냉소적인 감각을 가지고 2000년대의 초입에 나타난(그것도 [다중인격탐정 사이코]와 같은 소년 에이스에 연재된),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오해될 법도 한 작품이었다. 매너리즘, [저속령 데이드림]의 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질릴 정도로 낭비된 이미지들. 그런데다 주인공이 SM여왕님이라고? 하이구야.
그러나 [저속령 데이드림]은 매너리즘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 만화가 자신의 길을 나아감에 있어서 지면에 그려지는 달콤하게 팬시화된 캐릭터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야마다 레이지식으로 말하자면 '전후 수십년간 흑백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채 안이하게 굴러 온 세상'에서 작품은 진지해지는 것만이 적절한 공격무기가 된다. 그래서 [저속령 데이드림]은 쉼없는 실패와 타협으로 이뤄진 시스템의 역사 밑에서 피어난 악마들을 불러낸다. 도시괴담이란 형태로 드러나는 위협들을.
그것들은 마치 백일몽처럼, 둥둥 떠다니는 공포들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저속령 데이드림]의 적들은 그래서 작품 안에 내내 느슨하고 나른한 탈력적인 분위기를 불러온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공포는 더없이 치명적이다. [저속령 데이드림]은 종종 그렇게 놀라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씬들을 제공해준다. 햇빛 가득한 오후의 잠에서 깨어났을 때, 헤쳐 열려진 자신의 배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열심히 빨고 있는 악령의 퀭한 눈과 마주친 순간의 그 낯선 공포. [저속령 데이드림]은 악몽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아는 만화였다.
[저속령 데이드림]의 공포는 또한 제대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찜찜한 무력감에서도 비롯된다. 영과 퇴마사의 격렬한 전투 같은 쌍팔년도 먼치킨 퇴마물적인 활극감은 엿먹으라는 듯 무겁고 침침하게 악령과 마주하고 그에 빙의되어 텁텁하게 해결(에 비슷한 결말)을 가져오는 패턴을 보여주는 각 에피소드들은 이미 처음부터 틀어진 것들 중에 근본적으로 정리되는 것은 없다는, 어쩌면 세계의 법칙 비스무리한 것을 은연중에 견지한다. [저속령 데이드림]의 이러한 모호함과 내러티브의 복잡성은 캐릭터성의 빈약함을 견지하게 되는데 그것은 주연인 미사키나 소이치로는 제법 괜찮게 잡힌 특성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영 힘을 못 쓰는 두루뭉실하고 무력하기까지 한 인상으로 종종 남는다는 것에서 확인이 된다.
10권에 이르러 [저속령 데이드림]은 아쉬운 감을 감추기 힘들게끔, 일단 끝을 거둔다. 어지간히 복잡했던 이야기의 일단락적 수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완결편은 어떻게 봐도 어정쩡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훌륭했던 9권까지의 전개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문제다). 그것은 언젠가 다시 시작될 이야기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결국 여기서도 끝까지 밝혀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과 그것을 기술적으로 관철하는 마인드와는 별개로 갈등들이 너무 빠르게 식어버리는 감이 있기 때문이다. 한 권 내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급작스럽게 진행시킨 건 [저속령 데이드림]의 전체를 봐서도 드문 것으로 어떤 작가적 한계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마 [저속령 데이드림]의 끝에 대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여기서 드러나는 총체적인 모호함과 결론 미루기가 이 세상을 드러내는 어떤 표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직도 악령들이 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속령 데이드림]이 보여준 시대착오적인 세기말적 공포는 여전히 일정한 가치를 지닌다. 우울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