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계광장엔 지난 주완 조금 다른 양상들이 부분부분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과 대통령과 쇠고기 협상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이 소수 등장했던 것. 현장에 비추어 색다른 의견들을 들고 등장하신 그 양반들은,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주변엔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격론, 조롱, 쌍욕,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우파 시위대를 몰아부치는 것은 주로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자들의 역할이었다.

중간에 본 하이 미스터 메모리의 공연이 좋았다. 역시 예상대로 앨범보단 라이브가 더 신나는 친구들이다.

다시 돌아와 본 그들 중엔 청원에서 올라왔다는 부부도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미국에서 살다 왔다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고 그 안전성을 정부에서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며 시위자들과 고성을 주고받았다. 처음은 아내를 말리려던 남편은 이명박이 나라의 가장이며 아버지와 같은데 이제 취임 3개월째인데 물러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귀엽게 생긴 딸하고 아들이 각각 있었는데 아이들은 뛰어다니면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돈 받고 일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적어도 내가 본 몇시간 동안은 알바처럼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 중 한 사람과 격론을 하다 자리를 빼앗겨 뒤로 들어온 그들은 자신들끼리 심각하게 국가의 미래와 군중의 흐름에 대해 걱정하고 시위대의 교통방해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면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안 모인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 대사들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과격한 충돌은 없었다. 그들에 대해 거친 대시를 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을 막아선 사람들 또한 시민들이었다. 그 광경들 속에서 내내 작용했던 건 폭력은 안된다는 다수 사람들의 자발적인 제지였다. 심지어 우파 시위대에게 달려들던 어떤 할아버지를 막아섰던 쥐명박 스티커를 붙인 시위자 하나는 그 영감님과 고성방가 설전까지 벌였다. 머리를 쓴 몇몇 이들은 우파 시위대들 앞에 앉아서 이런 사람들은 신경 끄고, 신경 써주면 더 좋아하니까, 무시하고 시청으로 가서 사람들과 합류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우파 시위대는 7시 즈음인가 해서 일단 자리를 떠났다.

그러니까 진실은 이런 것이다. 현장에서 보수 주장하며 시위하는 건 무조건 일당 알바들인 것처럼 여기는 시위대측 군중의 논조도, 그리고 자칭 보수파 양반들에 대한 다수의 조롱과 시비만을 호들갑스럽게 강조하는 우익언론의 논조도  틀렸다. 그 현장에는 모든 게 다 있다. 모든 감정과 모든 것들이. 그리고 그것은 꽤 절제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같은 시민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것만은 양쪽이 유지하는 선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이번 시위는 굉장히 즉발적이고 본능적이며 현실밀접도가 높은 이유, 광우병에 대한 공포와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 시비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것은 이 시위의 욕망이 굉장히 단순하고, 동시에 분명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마땅히 머리라고 할 주체는 없어보인다. 산개되고 파편화된 다양하면서도 상충되기까지 하는 정치의지들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란 구심점 하나로 모여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자발적인 제어와 연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는 과거의 시위들과는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정말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서 보여지는 정치적 의지의 동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론 거대한 정치적 변혁을 원하고 있다. 무주공산은 혼돈을 불러올 것인가. 단순히 그렇게 쌍팔년도적으로 생각하기에, 지금 이 나라의 시스템은 지겨울 정도로 복잡화되었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덜 아마추어적이고 더 영리했다면, 즉각 재협상을 발표하고 조삼모사+시간 끌기식의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그분은 자신만의 방에 앉아서 자폭식 인사권이나 발령하면서 시간만 날려먹고 시위대들에게 동력을 제공해줬다. 그 우물쭈물함 자체가 능력의 한계치라는 거겠지만.

일단 시위대 측은 지속력의 문제다. 오래 갈 것이라고 본다. 단순하고, 즉각적인 화두니까(이제는 동기나 목적이나). 그러나 행동과 절제란 시위대가 품어야 할 딜레마다. 군중적 폭력이라는 것은 거대함 자체에서도 솟아나온다. 우리들이 무심코 밟아죽이는 개미들이 우리의 의도 때문에 죽는 게 아닌 것처럼. 그저 거기 있고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두렵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로 가자는 말에 대한 머뭇거림은 그 자리까지 가야 할 확고한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가서 어쩔 건데?) 시위대가 가진 딜레마의 표출이다.

정부측은, 답이 안 보인다. 혹은 너무 늦었다. 기름이나 안 부어서 청와대 진격을 막으면 그나마 성공이겠건만, 요 몇개월 동안 내내 보여줬던 정말 질릴 정도의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뭐라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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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6-07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그라질만하면 기름을 붓더군요..오늘도 국가원수님께서 두 건 하셨더군요...ㅋㅋㅋ

방문자 2008-06-0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민이 아닌 "시민들"이니까요.

hallonin 2008-06-07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론 관리 못하는 재주도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합니다.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