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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Emma 10 - 완결
카오루 모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엠마]에 대해선 부채의식 비슷한 게 좀 있다. 예전에 7권이 나오고 나서 이 만화를 맡았던 편집자분이 디시 만갤이나 블로그에서 엠마가 7권으로 완결이 아닌데 완결 났다는 얘기가 잔뜩 도는 통에 매상에 타격을 입었다는 편집자로서 무척이나 가슴이 아픈 뭐 그런 비슷한 심정 고백들을 한 걸 아주 심심찮게 접했기 때문에, 당시 7권으로 엠마의 이야기는 끝났다고 리뷰를 썼던 본인은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루머라는 LPG 가스통에 지포라이터불을 붙인 범죄자가 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며 유리구슬처럼 심약한 가슴이 긴박하게 벌렁거렸기 때문이다. 아니 뭐 난 '엠마'는 이제 결혼하니 퇴장하고 조연들이 주연으로 나와서 펼쳐지는 번외편이 있다는 걸 알았다는 전제하에서 '엠마'의 이야기는 끝났다는 뜻으로 그렇게 쓴 거였지만. 근데 10권 보니까 엠마 다시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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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이제 진짜 끝이다. 끝. [엠마] 끝. 238페이지라는 볼륨으로 밀어부치는 10권의 주역은 다시 빅토리아시대 최강의 된장녀 엠마라고 할 수가 있겠다. 수록된 8편 중 절반인 4편에서 주연으로 등장함으로써 제국의 역습이랄까 뭐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드는데 작가가 별 상관도 없는 에피소드들을 단지 빅토리아시대덕후다운 열정으로 가득 차 그리고 싶다는 이유로 집어넣었던 지난 번외편 8, 9권에서의 주변적 즐거움들을 즐겼던 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
사실 [엠마]는 그 주변적 즐거움을 중심으로 치환시켜서 자신의 가치를 확보한 이야기였기에, 엠마라는 캐릭터에게만 집중되었던 본편에 비해 당대의 다양한 풍경을 포착하는데 열중한 번외편에서의 생명력이 더 활달하게 느껴지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작품 자체의 시작에서부터 내재적으로 가졌을 당연한 결과에 다름 아닐지 모른다. 그렇기에 엠마가 중심축으로 등장하는 10권은 이미 예고된, 예정된 해피엔딩씬으로 향하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의 평탄한 전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양으로 다뤄지는 존스 가문과 빌헬름 가문의 고용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그간 번외편에서 보여줬던 능숙한 긴장감과 신중한 인간관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어울리지 않게 정치적으로 들어가자면 [엠마]는 세계 민중의 골수를 쪽쪽 빨아먹던 제국주의시대의 정점인 양식을 철저하게 매혹적인 시선으로 드러내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짧막한 언급은 9권에 실린 번외편 9화에서 인도의 아타와리 왕의 대사로 얘기되고 있다. 과객과 친구의 두 대립 개념에 대한 이야기. 그 이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하지만, 껄끄러움을 미끈하게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 또한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그정도가 매혹과 정치성의 양립에 대한 타협이 아녔을까 싶지만.
10권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시대의 전환에 대한 침착한 직시이기도 하다. 바퀴가 세개였던 자전거가 두개가 되고 적막하기만 했던 시골길 구석까지 열차가 들어오며 나이 든 하인은 은퇴를 한다. 평생 먼지떨이를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메이드는 자신의 역할에서 독립적인 여성으로서의 생의 의미를 확보하고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충성스러운 집사는 언젠간 올테지만 자신은 보지 못할 미래를 꿈꾸며 신분의 엄격함에 집착하던 아버지는 결국 말 안 듣는 아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메이드였던 엠마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엠마] 10권의 말미는 그 모든 변화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거와 미래를 축복하는 축제를 벌이는 이야기다. 예고된 이벤트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차분하게 즐길 가치가 있다. 그것이 미래를 향하는 자세 아니겠는가. 마치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올 정원의 아름다움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데 이 작가, 표지에서 엠마에게 또 메이드복을 씌워놨음.... 정작 10권 내에선 메이드복 입은 엠마는 단 한 컷도 안 나온다.
확실히 메이드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