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20대 '광장세대'는 어디로 갔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8356.html

 

그렇게 실감하진 못했는데, 암튼 10대랑 비교 되가면서 무기력과 반동 보수주의의 상징으로써 열심히 까이고 있네요. 뭐 별로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깔려면 까세요. 요즘 20대 병신 같은 거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네들도 제법 알긴 압니다 자기들이 병신이란 걸. 뭐 난 이미 20대 탈출 시점이기도 하고.... 더 문제네. 적어도 내 경우에 이런 류의 20대 비판이 여직껏 피부에 와닿지 않았던 건 한겨레나 경향 읽고 소위 386적인 왜곡에 분노할 시간에 조선 동아 읽으면서 낄낄대고 까대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 변명할 건덕지가 없는 마인드 막장인 게 생활이 되서가 아닐까 싶음.

그런데 과연 20대라는 것, 그리고 광장세대라는 것의 실체는 존재하는 것인가. 그것은 어쩌면 운동권적인 편의,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이제는 사회 중심부의 준거점세력으로 자리 잡은 이들의 기준에 맞춰서 가상적으로 책정된 반동세력이 아닐까요.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저기서 그렇게도 가능성이고 미래로 얘기되는 실제로 준동하는 10대의 실체수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전체의 10대에 비추어 얼마나 될지. 그것은 월드컵 때의 들끓었던 민족주의를 가리켜 편의에 맞춰 선한 민족주의라고 표현했던 것과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현재의 20대 전반이 가지고 있는 현실정치에 대한 피로감은 분명합니다. 분명 그들은 십여 년에 걸친 시간동안 정치적 주체가 되어 바꿀려고 했고 바꿨다고 믿었지만 한결 같이 배신 당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보자면 벼락치기로 대량생산된 카드 문화를 통해서 소비세대의 정점에 쉬이 도달했지만 그만큼 쏟아지는 파산 선고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받은 세대입니다. 스타크와 리니지로 소통이 가능한 세대이며, 영어에 대한 강박증과 자격증 신드롬에 뒤늦은 몸을 실고 뒷세대와 경쟁해야 하는 세대기도 하구요. 후자쪽의 강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지만, 이후의 세대들은 그것을 훨씬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세대들일 겁니다. 그러니까 20대는 일종의 격한 마인드적 졸부이즘을 세차게 겪은 거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를 어떤 동일한 패턴 속에 몰아넣는 것은 여전히 위험해 보입니다. 20대의 정치피로감은 세대의 공통분모로 국한되는 문제라기보다는 보다 인간 근본적인 계몽, 혹은 각성의 문제라고 보이거든요. 이제 와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같은 일이 계몽의 성과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각성이라기보다는 단지 가능성의 표출이었고, 결과적으론 그 표층화된 가능성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보다 원초적인 치기라고 하는 것이, 진중한 결론에 도달하는 걸 방해합니다. 그것을 젊음이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세대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10대로 얘기를 돌리자면, 저야 설렁설렁 되는둥 마는둥 살아온 인간이지만, 교육적 제도적 차원에서 10대들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구조적 피로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반복되어 지속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떤 준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지속적인 정치적 의지에의 각성으로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 이 부분은 좀 회의적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엔 지금의 아이들은 소비적 쾌락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경제'가 본격적으로 끼어드는 순간 어떤 현상들이 벌어질지.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준동에 의한 변혁은 작용반작용의 반복인 변증법적 역사를 고착시킬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익숙해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마땅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여기서 '익숙해짐'이란 체제에의 편입이란 측면으로 봐서도 해당되거니와, 적절하게 사회적 타협을 이뤄낸 유사준동에 대한 익숙해짐 또한 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시스템은 점점 강화되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협상 테이블 위에서의 경제법칙에 의거해서 얼마나 기민하느냐에 따라 결정지어지리라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이것이 보수 반동의 마인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아주 느리고 점진적인 차원에서의 계몽이 되리라는 생각입니다(계몽이란 표현은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이것은 미묘한 마조히즘적 감각이 곰발바닥을 간지럽히는 것 같은 지속성이 동반되어야 하는 길고 긴 수난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옛 현인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수도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처세, 인 거겠죠. 심지어 마더어스를 위해서도 말입니다. 치사하긴 하지만 이것은 무기력하게도 모든 가능성을 인정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차이, 정도차라는 범주의 운용이 보장해야 할 탄력성은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농담 또한 중요해지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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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8-05-29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신입사원은 들어올 때 토익 800이 넘지만 그 위에 계신 관리자 분은 700만 넘으면 승진에 하자 없음. 하지만 이 체제는 흔들리지 않았죠. 반면에 다가오는 10대들은 중, 고딩 때 토익 만점자 속출. 저는 20대가 이들에게 먹힐 거라는 '불안'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직 20대는 '관리자'에 들어가지 못했고, 들어가도 간당간당하지 않을까 싶은. 해결 방법은 없어 보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헬스 열심히 해서 떡이나 치러 다니는 건뎅. ㄷㄷㄷ

hallonin 2008-05-29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마법사가 아니셨던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