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낭만적인 어휘를 가져오자면 '운명'에 의해, 일생을 스스로에게 강요한(그러나 종종 실패했을) 감정의 강제적 진공 상태로 수도사적인 고립을 강박처럼 느끼며 살았을 브람스의 음악들엔 무언가 기본적으로 묵직한 아우라가 신뢰감과 함께 붙는 듯싶다. 26살 때 완성했다는 피아노 협주곡 1번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 진중함과 무게감은 도저히 그 나이대의 것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그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으로 그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거의 천성과도 같은 것이리라. 어느 한 부분 함부로 쓰이는 걸 극단적으로 두려워하는 듯한 촘촘한 밀집도. 그러면서도 온갖 감정의 파고를 넘나드는 그 다채로움과 섬세함은 이것이 얼마나 숙고를 거듭하여 단단하게 짜놓은 드라마인지를 본능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성당의 한복판에 선 느낌.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가끔씩 격렬한 통증을 수반했을 오래되고 긴 고통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리라.
그의 두번째 피아노 협주곡은 1번이 발표된 후 23년이 지난 다음에야 완성된다.
좋은 앨범이다. 2for1에 해당하는 착한 가격도 그렇거니와 그라모폰 보증 딱지가 붙은 연주는 일천한 내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본에서부터 착실하게 시작하여 거대한 파노라마를 구조해내는 브람스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앨범을 완성한 프레이리의 나이다운 사려깊은 부드러움과 샤이의 매끄러운 진행은 브람스의 천성적인 신중함과 지극히 닮아있다. 마땅히 귀가 먼저 느낄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