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년 - 하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세기 소년] 1권을 봤을 때의 충격은, 비록 [몬스터] 1권을 봤을 때 만큼의 크기는 아녔지만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당시 우라사와 나오키는 [몬스터]의 막바지를 한창 진행중에 있었는데 [20세기 소년]의 첫 권이 보여줬던 흡입력은 [몬스터]와 맞먹을 정도의 '물건'이 나왔음을 직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확실히 [20세기 소년]의 전반부는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작가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증명해냈던 시기로 두 '물건'을 동시에 관장하는 작가의 기획력과 전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이후 무려 8년에 걸쳐서 이어지리라고 예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을 듯싶다.

[몬스터]는 그 출중한 흡입력에서뿐만 아니라, 작가적으론 우라사와 나오키 3기의 역동적인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 작품이었다. 그 전까지 [마스터 키튼]이라는 단단한 작품의 매니악한 팬들을 거느린 작가이자 [야와라!]와 [해피]를 통해 적당한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수확한, 이미 성공한 작가였던 우라사와 나오키는 [몬스터]를 통해 그 두 영역을 성공적으로 융합시키면서 자신의 캐리어의 무게감을 한 단계 상승시킨다. 작화적으로도 비로소 오토모 가츠히로의 긴 자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완성시킨 [몬스터]는 현재까지도 진행중인 총체적인 우라사와 나오키 스타일의 출발점이다.

[몬스터]의 자장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미스테리물로, [20세기 소년]은 소재적인 확장을 통해 우라사와 나오키의 새로운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작가 자신을 포함하여 지금은 4, 50대가 되었을 이들이 가졌던 고리짝적 추억들로 이뤄진 확대재생산을 통해서다. 기실 [20세기 소년]이 노리고 있는 미스테리적 쾌감과 스펙터클은 주인공들이 겪었던 과거로의 주기적인 환급을 통해 세계대전의 전후 20세기의 경제성장기를 거쳐 온 이들이 가지고 있을 레트로적인 공통분모에 기반하고 있다.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우리들에게도(이크!) 무척이나 익숙한 것들이다. 괴담, 비밀기지, 불량식품, 괴수대백과사전, 변신로봇과 외계인, 사춘기 초입 무렵에 치루게 되는 하드록의 세례와 같은 것들. 그것이 언젠가는 미래의 아이들에게 피시방 온라인게임과 창고형 매장, 힙합, 편의점의 형광등 불빛으로 대체될런지는 모르겠지만. [20세기 소년]은 반갑고도(또는 세대에 따라선 신선할, 그러니 이미 두 개의 공략포인트 확보) 천진스러웠던 노스탤지어적 감정을 자극하는, 삶에 치여 잊어버린 시절을 어떻게든 기억해내야 하는 강박을 가지게 된 중년들의 긴박감 넘치는 후회담이다. [20세기 소년]의 악몽은 바로 그 병적인 고착에 대한 것, 천진한 공상과 추억으로 남아 있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바로 여기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들이 꾸준하게 보여주는 '사소한 노스탤지어적 원형으로의 귀환'이란 테마가 다시금 발견된다. [마스터 키튼]의 에피소드들에서 심심찮게 쓰였던 '귀향' 소재도 그렇거니와 키튼 자신은 고고학자라는 자신의 본분을 억지로 접고 보험조사원으로 방황하는 인물이었다(여기서 [마스터 키튼]의 표적은 현대 서구문명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과는 비교되게 일본이라는 자국의 역사적 치부는 건드리지 않는다. 전체적인 양상으로서의 귀환 테마와는 상반됨과 동시에 서구(주로 유럽)문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 성립되는 이 '원형'에 대한 외면은 이후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의 정치적 좌표-[몬스터]는 네오나치에게 쫓기는 선한 일본인의 억울한 이야기이기도 했다-에 대해 심심찮케 의심을 품게 만드는 꾸준한 일면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 유럽을 다 말아먹을 것 같았던 요한의 발걸음이 비로소 멈춘 것은 자신의 과거를 간직하고 있던 시골 구석에 있는 오랜 옛날 지옥의 한 현장에서였다(그 상대적으로 소박했던 결말에 적지 않은 이들이 불평을 쏟아냈던 걸 기억해볼만 하다). [20세기 소년] 또한 마찬가지다. 아예 구조적으로 과거소급을 깔아두고 전개되어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길었던 이 이야기는 때가 되면 튀어나오는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반전 행렬과 함께 그 주기적인 환급이라고 하는 구조 자체가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반복되면서 서스펜스의 패턴화를 불러왔다. 그 결과, 때 되면 나올 반전에 대한 예정된 기다림으로 인한 긴장감의 결여는 소위 나오키 매너리즘의 어떤 증표로 굳어버리는 상황까지 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종종 관성마저 떨어질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체 무엇이 있었는가'라는 물음표는 [20세기 소년]을 끝까지 끌어 온 중요 동력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1세기 소년]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의 시작을 우라사와 나오키답게 보여준다. 티렉스의 '20th century boy'와 함께 시작됐던 무척이나 소소했던 그 때를. 깨닫고 후회하고 용서를 빌지만 그것은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 신기루에게 물어봤자 시간과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즐거웠던 추억이든 비극이든, 시간에겐 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후회만이 기다린다....

 

 

그러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죽을 수가 없는 법이다. 이 기구하고 어지러웠던 만화에서 해피엔딩으로서의 인생긍정이 진정 빛나는 부분은 '신령님'의 말씀으로 유쾌하게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다. 비바 볼링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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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8-05-2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끝날때 나오던 '친구'의 정체는 관심을 잃어버렸던지 오래..
중요한건 가르쳐줘도 누군지 모르겠더군요 -_-;;

hallonin 2008-05-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그럭저럭 언급되던 친구던데요. 하지만 확실히 문제는 그 전에 이미 관심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거지만.

배가본드 2008-06-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은 물론이고 당연히 '주인공은 켄지였다'라고 할거라 예상은 했지만 스토리는 칸나가 다 끌고가놓고 마무리는 당연히 주인공이 깔끔히 정리해버리는 결말은 괜히 보기에 껄끄러웠습니다. 차라리 '피의 그뭄날?'에 같이 돌격했던 친구들中 하나가 '친구'였다고 하는게 스토리상의 완전성?이 더 높았을거라는 개인적인 안타까움이.. 뭐 결국 문제는 너무 질질 끌었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