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의 이미지는 지금에 와선 분명 낭비된 바가 있다. 그것은 그녀의 노래만큼은 못한 변변찮은 에세이 때문이라든지, 예술가라는 말이 '아뤼스트'라는 단어로 너무 자주 희화화되는 한국사회에서의 자의식 대비 위치에서의 어떤 대외적 만족을 충족시키지 못한 바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지금 형성되어 있는 음악적 매너리즘에 의한 간극은 그녀가 아이돌스타라는 '달콤하지만 텅 빈 족쇄'에서 스스로 뛰쳐나와 진지한 음악가로, 그것도 충분히 대안적인 위치를 잡으며 성공적으로 거듭나는 그 마이너 수퍼스타로서의 과정이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강력한 셀러브리티적 대안으로 다가왔던 것에서 그 아우라에 대한 충족지수 여하에 기대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아우라는 그녀를 대외적으로 소진시킨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모든 비아냥이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보여주는 자의식, 예술가라는 에고가 그저 공허한 자기위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건 그녀가 쉬지 않고 수행해 내고 있는 벌써 13집까지 나온(조용필?) 앨범 작업들로 증명이 될 것이다. 존재의 증거를 증명해내는 것(그것을 유치하게 진정성이라고 불러도 되겠다)은 꾸준함의 역할이다. 물론 최근 그녀의 작업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적인 문제지만.

그러나 나는 '외롭고 웃긴 가게'의 첫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을 때 느꼈던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진정 소름돋는 중얼거림, 그리고 이상은이란 가수가 세상에 있음을 비수로 귀에 꼽아넣는 결정적인 예리함이었다.

[Asian Prescription]은 그녀의 영어 앨범이다. 그녀가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족주의적 자존심의 연장선에서 바라 본 얘기(짜증날 정도로 전형적이게도)도 있었지만 후에 나온 또 다른 영어 앨범인 [Lee Tzsche]에선 외국어로 발현되는 의미의 다중성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게 맞는 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앨범을 비교하자면 난 이쪽이 더 맘에 든다. [도시락특공대 2집]에 보다 차분하게 어레인지되어 실려있는, 유난히 방정맞은 느낌의 'Actually, Finally'를 [Lee Tzsche]의 첫 트랙으로 들어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어로 부를 때보다 건조해진 영어가사로 직조된 도시적인 서늘함과 묘한 청량감이 시종 우울하게 어른거리고 있는 [Asian Prescription]에는 무엇보다도 노래방 단골곡인 '어기여 디여라'가 실려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