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 서는 법이란 걸 모르는 염병할 경기도 버스들을 여러 대 보내버리고 예정 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도착한 고양시에 있는 창고에는 이미 세 명의 일꾼이 도착해서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인력사무소에서 고용한 두 명의 우즈벡인과 한 명의 중국인이었다.

 

작업은 무미건조하게 진행됐다. 쓰레기 양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여유는 있는 편이었다. 우리들은 쉬는 시간에 둘러 앉아서 맛대가리 없는 뻑뻑한 샤니 빵을 씹고, 사이다와 요구르트를 들이키면서 제법 적적하게 시간을 보냈다. 귀수술을 한 건지 보청기인지 모를 괴상한 플라스틱을 귀에 끼고 있던 통통한 중국인은 당연한 말이긴 한데 너무도 능숙한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밖에 모르는 상태였다. 우즈벡1은 한국어 회화가 상당한 수준까지 가능했고 우즈벡2는 그보단 떨어졌지만 말을 알아듣는 건 가능했다. 당연히 나는 우즈벡어와 중국어 양쪽에서 젬병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대화는 그럭저럭 공용어인 한국어로 이뤄지곤 했다.

 

그 과정은 꽤 재밌는 것이었다. 우즈벡인들은 중국인하고 얘기할라 치면 하오하오 밖에 할 줄 몰랐고 중국인은 그래서 말보로 레드에 걸신 들린 우즈벡인들끼리 떠들 때면 가만히 앉아서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주변을 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에 있는 우즈벡 식당 위치와 우즈벡 맥주 맛이 어떤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지만, 곰팡이와 곤충똥, 썩은 나무들로 구성된 동굴 같은 비닐하우스 창고 안에서 하루 종일 4톤 가량에 이르는 그 빌어먹을 쓰레기 종이 더미를 옮기느라 허리 병신이 될 거 같았던 우리들은 작은 틈새 시간들 속에서 아마도 어긋났을 의미의 대화들과 표정과 몸개그를 통해 웃을 수 있었다.

 

일당은 1인당 팔만원이었다. 나는 월급이고.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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