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프록에 대해 으례 떠올리게 되는 난해한 인상의 모든 것을 정석처럼 들려주는 닥터 지의 유일작. 전개의 난해함이라든지 익숙한 멜로디를 억지로 피해가는 듯한 인상이라든지 밥맛 떨어지는 보컬이라든지 닭살 돋을 정도의 주제의 알레고리화와 자뻑마인드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기술적 테크닉과 공존한다든지 하는. 거기에 더해 영국산 프록다운 다크하고 신경질적인 우울삘까지. 이 모든 요소들은 이 앨범이 어째서 핑크플로이드나 킹 크림슨만한 중용적이고 보편적인 세련미에 도달하지 못하고 매니아들의 성전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즐겁고, 또 이 시대에 이르러 그 투박하게까지 느껴지는 독불장구니즘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처음 들었을 땐 거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겠으나, 확실히 이 과소한 포장 안에 자신들의 음악적 야심을 과포화 상태로 밀어넣는 그 뚝심과 그것이 이뤄낸 앨범 전체를 유기적으로 엮는 기묘한 불협화음적인 성과의 매력에 슬슬 매혹되기 시작한다. 프록 장르에 대해 가할 수 있는 전형화된 비판인 '그딴 자뻑을 뭐하러 듣나'라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겠지만 일단, 재밌다.

의미에 대한 결론이 '없다', 로 끝나는 건 세계에 대한 무시이며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위치지어졌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적절한 타협으로서의 차단을 수행하지 않는 한에, 적어도 현재의 세계에선 그 수천 년 전에 나온 고리짝적 결론 너머로 넘어서야 한다. 의미란 애초에 없는 것이기에, 창의라는 유희가 보장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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