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론으로 얘기되는 거라면, 나인인치네일스의 [with teeth] 앨범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그 어디쯤인 듯 싶다. 확실히 내가 듣기에도 오랜 슬럼프를 끝내고 나온 앨범다운 피로감과, 이전의 자신의 색깔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강박이 섞여서 개인적으로 무지하게 맘에 드는 곡과 어설프게 맘에 안 드는 곡들이 들쑥날쑥하게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앨범이 나에게 있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13번 트랙 'Right Where It Belongs'를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바로 뒷편에서 힘겹게 웅얼거리는 것 같은 트렌트 레즈너의 목소리가 곡 말미에 가면서부터 관중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목소리의 발화 위치가 달라지도록 프러듀싱되어 있는데, 그 효과가 굉장했다. 마치 진흙벽 너머에서 들려오던 것 같은 목소리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거대한 진공 효과를 통해 머리 속 세상을 가득 메우는 것 같은 느낌. 온전히 소리로만 구현된 그 입체감은 그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환상적인 것이었다.

그때 썼던 이어폰이 빅터 HP-AL5. 가격은 만원 내외인 싸구려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어디서도, 어떤 걸 써서도 같은 곡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늘 어쿠스틱 플랜의 CDP와 프라이메어 프리+파워, 그리고 레벨 살롱2로 같은 곡을 들어봤다. 소리가 오른쪽에서 머물다가, 그 변화되는 부분에 이르자 서서히 가운데로 옮겨가며 공간을 확장시킨다. 이것은 하나의 단서인가.

처음 접한 것이 접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면, 그 환상과 후유증은 꽤 오래 가는 법이다.


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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