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골드문트는 [지와 사랑]의 골드문트가 아니라 예의 스위스 오디오회사. 익히 알려진 듯이 대놓고 엄청난 고가 정책을 지향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선 갑부들의 증거 지표쯤으로 잡혀 있는 회사였죠.
골드문트 EIDOS 18 6000달러
파이오니어 DV-696A 200달러
가뜩이나 인구수 없는 오디오 업계에서 더더욱 소수인 하이엔드판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쪽 안에서만큼은 꽤 요란한 편입니다. 문제의 요점은 6000달러짜리 골드문트가 저 200달러짜리 파이오니어의 메커니즘을 거의 고대로 가져다가 썼다는 거죠. 배치에 따른 튜닝 약간 하고 방진용 마그네틱 댐퍼 좀 깔고.
뭐 솔직히 까고 말하면 명품이란 거 뜯어보면 다 탄자니아니 중국이니 베트남이니에서 원가 수원 단위들 가져와서 붙여 만든 거고, 결국 거기서 중시해야 하는 것은 제작자가 보유한 디자인적인 가치, 무형적인 힘이라는 전형적인 얘기가 있습니다만. 비슷하게라면 유재석이 시덥잖은 개그 좀 하고 돈 버는 거에 태클 걸 수 있느냐는 거죠.
오디오쪽은 그 부분에 있어서 좀 미묘한 것이, 단순히 디자인적인 면만 아니라 내부의 오리지날리티한 기술의 확보란 측면이 있어서죠. 사실 하이엔드 오디오 업체는 영세한 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독자적인 기술과 디자인을 가진 고급 가내수공업품으로서의 아우라를 보고 선택하는 이들도 있고. 그러나 디지털 기술쪽으로 들어가면 오리지날 노하우 가진 곳은 거의 대형업체들이고, 저런 식의 기술 가져와서 포장하기는 횡행하는 편이죠. 물론 정말 노가다 앰프나 노가다 플레이어를 만들어내서 훌륭하게 소리를 뽑아내는 곳도 있지만요. 이번 사건이 배신감을 안겨준다거나 골드문트의 매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그 아우라의 보편성을 믿어왔던 이들에게 해당되는 일일 겁니다.
CD+SACD 플레이어로 가장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게 파이오니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 파이오니어 튜닝 골드문트가 파이오니어랑 똑같은 소리를 내줘버리는 것이냐, 바로 요 문제에서 골드문트에 대한 진정한 결정타가 가해지느냐 마느냐겠죠. 그렇게 했더니 음색이 다르고, 골드문트만의 그런 음색이 좋아서 30배에 달하는 돈을 기꺼이 내겠다, 이러면 뭐 온전히 당사자 차원의 문제지만.
가끔씩 금으로 채워도 그 가격은 안 나오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게 골드문트 제품들이었는데, 전부터 음질 좀 듣는다는 사람들은 골드문트 쓰는 사람 별로 없다고 하죠. 전 막귀기도 하고, 뭐 돈도 없으니. '골드문트를 살 돈도 없으면서 까는 넘들' 라인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하긴 하지만 이 사건 역시 너무도 세상사적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