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들려오는 티모시 트레드웰의 흥분해서 빽빽거리는 목소리는 그가 이 곰들의 세계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있음을 알려준다. 단편적인 얘기들에 따르면, 그는 스무 살 이후로 공포와 위기 속으로 자신을 꾸준하게 몰아넣곤 했다. 습관적으로. 그것은 인생의 좌절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그것이 도피이든 도전이든, 종국적으론 그것은 동화에의 강렬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괴물들의 세계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그는 자연주의자가 아니다. 비디오 카메라를 그토록 사랑하고 생태계의 단계적 살해 과정을 이해 못하는 이가 자연주의자일 리가 없다. 그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자연에 매혹된 몽상가. 그가 편입되고자 했던 세계는 그가 상상하는 것만큼 감상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마치 그는 위험 속의 자신이란 것을 자각하는 시점에서만 끊임없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다. 그것이, 그 본능적인 유혹이 그를 포식자들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가 이해하려던 영역은 무척 편협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도 얘기하리라. 어떻든.
어떻든, 그는 경계를 넘어선다. 궁극적으로 그는 경계를 넘어서는데 성공한다. 심지어 삶마저도. 곰들의 삶 속으로 자신이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는 절망하고 슬퍼한다. 헤어조크는 그리즐리곰의 눈에서 무관심과 먹이대상을 바라보는 냉혹한 호기심만을 발견한다. 그러나 티모시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있어야 할 세상이라고 느낀다. 그는 곰들과 하나가 되길 원한다. 이것은 잔인한 이야기다. 티모시가 어느 암컷 곰의 똥더미를 경탄해하면서 만지던 장면이 나오던 것을 기억해보자. 그것은 바로 방금 전까지 곰의 뱃속에 있었던 것이며 바로 방금 전까지 곰과 하나였던 무언가였다. 그렇게로라도 그것은 곰들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 똥더미에 대해 티모시가 보여주는 기이한 찬탄과 부러움. 그가 죽기 얼마 전부터 보여줬던 광기와 자살에 가까운 캠프 위치 선정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드디어 주춤거리던 그가 경계를 넘어섰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얼마 후에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곰의 뱃속에서.
경계를 넘어서다. 내가 속해 있지 않은, 내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속으로 직진해 들어가 보다. 그 속에 먹힘으로써 완성되는 경험.
선을 넘는 것은 썩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상 가치란 별 게 아니다. 그러나 가치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순간, 농담은 사라진다. 정말로 재미있는 세상이란 건 열외자의 시선에서부터 파생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담배 냄새와 샴푸 냄새와 습기진 곰팡내가 뒤섞인 공간. 무질서하게 굴러다니는 술병들. 침침한 형광등 빛이 도배가 안된 시멘트벽의 눅눅함을 강조해보이고 있었다. 상냥함을 가장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직 먹히지 않는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