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의 신중함과 보다 깊이 있는 통찰이 연출에서 드러날 때 나락에 떨어졌던 틴에이지 팝무비도 햄릿의 영역으로 기적처럼 솟구쳐 올라 올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였다. [스파이더맨]이 단계적으로 통과의례를 거치는 동안 [배트맨 비긴즈]는 보는 이가 피곤해질 정도로 꽉꽉 밀어넣은 스토리 속에서([배트맨 비긴즈]는 거의 드라마 1시즌 분량을 두시간 짜리 영화에 밀어넣은 것 같은 감각을 선사해준다) 트라우마와 신경가스, 파쇼적인 전투집단들을 등장시키면서 단숨에 성년의 어두운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팀 버튼과 프랭크 밀러가 가면을 쓰고 검은 갑옷을 입은 채로 도시를 날아다니는, 초능력이 아닌 돈(!)과 신체 단련만으로 적을 상대하는 영웅 속에서 신경증적인 어둠을 발견해낸 지점과 같은 통찰이었으리라.
조커와 배트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인물이다. 항상 심각하게 찌푸린 얼굴을 하고 표정조차 알 수 없으며 검은색으로 자신을 도배한 배트맨과는 달리 조커는 원색의 옷들을 두른 채 늘상 웃고 있으며 유희에 가깝게 사고들을 친다. 그러나 그는 배트맨이나 자신이나 같은 괴물이란 걸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조커를 극복해야 하는 배트맨의 통과의례, [다크나이트]는 악과 다른 얼굴을 한 괴물이란 어떤 자리를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 마땅한 수순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익숙하게 반복되어 왔지만 그 반복 만큼이나 흥미로움 또한 보장하는 자아와 정체성의 거울효과에 대한 고전적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