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원소]에서 나왔던 믹싱으로 채워지고 쪼개진 스페이스 디바의 일렉트로니카 성악곡이 내용적으로 차지한 그 어마어마한(비대한) 지위에 비해 영 촌스럽고 구닥다리처럼 보였던 이유는 그것이 뤽 베쏭의 오래 묵은 SF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미 우리 모두가 비요크의 노래를 들은 다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데뷔하면서부터 지난 세기의 마지막 오년여 간을 거의 모든 여자 보컬리스트들이 따라잡아야 하는 경지, 혹은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될 대상, 아니면 그 기이한 열정에의 매혹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 마녀와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합쳐서 아연으로 간 다음 오래된 턴테이블에서 돌려서 만들어낸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고안해 낸 불협화음의 엇박자적 조화는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순진함과 기괴함이 뒤섞인 이계적인 공간감을 구성해낸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무가 되고 녹슨 쇠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물소리 같고 메아리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독특하고 독보적이어서 누군가가 그녀의 노래를 따라 하면 두가지 대답이 있을 뿐이었다. 비요크를 베꼈다는 소리거나 어설프게 베꼈다는 소리거나.

물론 타인의 매너리즘도 온전히 그녀만이 가진 독자적인 소리와 함께 찾아왔다. 비요크의 노래는 지겹다던지, 이제는 신선하지 않다던지. 너무 강렬할수록 쉽게 익숙해져버리는 후각의 명민한 게으름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에 의한 자극은 잦아들어갔다.

 

그러나 비요크는 멈추지 않는다. 그해의 워스트 드레서상을 휩쓸기에 충분할 정도로 괴이한(그리고 웃기는) 패션센스를 지나치게 과감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거리낌없음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길이 어떤 평가를 받든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없어보인다. 결과적인 걸 제외하고 음 자체로 볼 때 그녀는 어지간한 아방가르드 음악을 훌쩍 뛰어넘는 전위적 음악세계로 쉬이, 그리고 꾸준하게 침잠해 들어간다. 하물며 그녀의 메가히트 트랙인 'hyper ballad'조차도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화음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경이가 우리를 놀라게 만든 주안 아니었던가. 음의 실험에 있어서 그녀의 욕구는 그칠 줄 몰라 보이고 그런 추구는 그녀에 대해 어떤 평가가 떨어지든 아랑곳 하지 않고 지속됐다. 뒤늦게 그녀를 일컬어 포스트 일렉트로니카라고 부르는 표현이 정확한 이유는 그녀가 항상 '그 뒤'를 향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가 이제야 한국엘 온다. 올해로 마흔을 넘어간 나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순진한 아이 같고 동시에 여전히 천진한 마녀 같다(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목소리 또한). 마치 수줍은 얼굴로 오래된 기담을 노래하는 것 같은 그 얼굴과 목소리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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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2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기억나는 영상은 태국공항에서 인터뷰하는 여기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바닥에 패대기를 쳤던 동영상이랍죠..^^

hallonin 2007-11-2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전후로 비요크 엄마 집에 폭탄이 배달되기도 했고 좀 정서가 많이 불안정했던 걸로 기억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