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아니면 그 둘 다이건 굴드의 영상은 보는 재미가 있다. 미셸 슈나이더의 지적에 따르면 충분히 연출된 것이라고 하는, 신들린 예술가의 이미지로써 작용하는 동영상 속의 굴드는 취한 듯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테크닉에 있어선 절대로 흐트러짐이 없다. 그는 때론 협주곡임에도 피아노로 음악을 다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며 그것은 보는 것 자체가 상당한 즐거움이다(번스타인이 협주곡에 있어서 조화를 포기하고 솔리스트에게 모든 걸 떠넘겼던 유일한 예가 글렌 굴드와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고 말했던 걸 기억해보자).

 

이 이중성, 열정 섞인 광기와 치밀한 계산 간의 균열이 보여주는 경이가 굴드가 견지했던 방법론적인 자세였다는 걸 감안하면 그가 '부숴버리는 마인드'(흔하게 록!적이라고 불리는)로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순식간에 해치웠던 사건 만큼이나 시대를 앞서서 미디어를 간파하는 식견까지 가지고 있었음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선천적인 성격에 일말의 의도가 더해졌을 것이라 의심되는 바이지만 그는 노출횟수를 줄임으로써 영상적인 측면의 자신의 자산 또한 보장하는 방법도 구사했다. 온전히 그의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반한 이가 눈으로 보게될 경이의 창조 순간에 대한 열망을 생각하면 그 선택은 그의 소비자(혹은 노예, 또는 네크로맨틱 그루피, 뭐 어쨌든)가 느낄 소위 짜릿함이라는 감정을 위해서라도 훌륭한 것이었다.

해서, 이 물건을 바라보는 시선은 또한 적당히 착잡하면서 동시에 음습한 욕망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디지털적인 부활의 증거는 그의 삶이 온전히 피아노(앨범)만 남겨뒀다는 결론에 동의한다면 더욱 괴이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여기서 증발된 굴드의 숨소리를 찾다가 실망하는 이들이 그렇게도 많은 것이리라.

 

 

그 모든 판단이야 어떻든 그의 피아노는 가만히 어둠을 울린다(부활 이전 녹음 한정. 이런 구분까지 지어줘야 하다니). 그가 피아노를 통해 구현했던 수도자적 자세의 결과로 가지게 된 완전한 피아노 소리로의 침잠 만큼이나 가치있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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